[기사문] 검찰 서열 끝장! 소리 없는 혁명 | ||
발행일 : 2003-09-09 | 등록일 : 2003-09-09 | |
[주간동아]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3월 초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법조계 대선배인 현정부 고위 관계자를 찾아왔다. 취임 인사와 함께 검찰 인사에 대해 자문하기 위해서라는 게 방문 이유였다. 그러나 이날 만남에 대해 고위 관계자의 한 측근은 “검찰 인사에 대한 두 사람 간 견해 차이만 확인한 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날 고위 관계자가 강장관에게 강조한 것은 ‘서열 파괴’식 검찰 인사에 대한 우려였다. 이 관계자는 “육군 상사를 어느 날 갑자기 사단장으로 임명해놓으면 군대를 지휘할 수 없듯 갑작스러운 서열 파괴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고위 관계자의 측근은 “강장관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아 이미 서열파괴 인사에 대한 방침을 확실히 정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장관의 이런 확고한 의지는 인사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3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도움을 받아 검찰 인사를 둘러싼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제압한 후 검사장급 이상 고위 간부에 대한 ‘서열 파괴’형 인사를 강행했고, 8월 인사에서는 사법연수원 동기생 중 선두주자들을 일컫는 ‘귀족 검사’들과 지방을 전전하는 ‘팔도 검사’들의 평준화를 추진하는 ‘혁명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귀족 검사’ ‘팔도 검사’ 평준화 강한 의지 강장관은 이런 인사를 통해 ‘수사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한 검찰에 전적으로 맡기지만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견제하겠다’는 의지를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강장관은 취임 직후 주간동아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도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의 고유권한이므로 철저히 챙기겠다. 한 명 한 명 직접 검토하겠다”면서 검찰 인사에 대한 소신을 분명히 했다. 최근 법무부와 검찰 일각에서는 강장관의 이런 소신 때문에 강장관과 송광수 검찰총장 간에 갈등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특히 8월 중간부 인사에 대해 대검 쪽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것. 무엇보다 송총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대검 기획과장 H부장검사를 서울지검 동부지청 형사2부장으로 전보하는 등 대검에서 전출된 검사들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기 때문. 과거 관례대로라면 H부장은 당연히 서울지검에 입성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법무부로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게 아니다. 법무부 근무 검사들 역시 ‘당연히’ 서울지검으로 진입했던 과거와 달리 재경 지청 또는 지방으로 보내졌기 때문. 법무부에서 서울지검 진입에 성공한 부장검사는 형사7부장에 임명된 C부장뿐이다. 대검 연구관, 서울지검 부부장 등 ‘귀족 검사’ 코스를 걸어왔던 C부장은 평준화 인사방침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서울지검 입성에 성공,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대체로 8월 인사에 대해서는 신선하다는 평가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경향(京鄕) 교류’ 원칙을 철저히 관철하는 등 인사 혁명을 시도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얘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과거에도 그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장관이나 총장이 바뀌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지방으로 발령난 한 부장급 ‘귀족 검사’)는 것이다. 강장관은 그동안의 인사를 통해 검찰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엇보다 과거 권력형 비리 사건에 대한 부실 수사에 책임 있는 검사들을 내보내거나 한직으로 보내고 대신 수사능력을 인정받은 ‘강골 검사’들을 전진배치, 능력에 따른 인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심지어 민주당이 껄끄럽게 생각하는 검사들까지도 차별하지 않고 요직에 등용하는 배포를 보였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도 강장관의 이런 의지가 결실을 맺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검찰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 의혹’ 사건이나 복합 쇼핑몰 굿모닝시티 분양 비리 사건, 현대 비자금 사건 등의 수사에서 정치권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성역 없는 수사’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물론 아무리 강장관이 분위기를 조성해주었다고 해도 송총장을 비롯한 검찰이 의지가 없었다면 검찰의 신뢰 회복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치 바람 없이 수사에만 집중”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김민영 국장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높은 것은 검찰이 정치 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수사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검찰의 한 간부도 “검찰이 무력시위에 가까운 행태를 보일 때도 참을성 있게 수사권을 존중해준 강장관의 뚝심을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대형사건 수사에 참여한 한 중견간부는 “처음 강장관이 법무장관 물망에 올랐을 때 검찰 내에서는 ‘차라리 최병모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이 더 낫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으나 검찰 수사를 존중해주는 강장관을 보고 강장관을 다시 평가하게 됐다”면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검찰 수사에 대해 법무부 쪽의 간섭은 전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검찰의 제자리 찾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평가다. 성역 없는 수사 못지않게 중요한 게 검찰 수사의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파쇼화하고 있다’는 정치권의 주장을 차단하기 위해서도 더욱 그렇다. 검찰 출신의 민주당 한 의원은 “정치권은 굿모닝시티 사건 수사 과정에서 보인 여당 대표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 자체를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 “그러나 구속이 곧 처벌이 아닌데다 형사소송법상 불구속 기소가 ‘원칙’인데도 여론을 의식해 도주 우려가 없는 여당 대표를 구속하겠다고 하거나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장관은 이처럼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수사에 대해서는 인사권 등을 통해 당연히 견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장관에게 남겨진 과제 가운데 하나는 검찰 감찰권 이관문제. 강장관은 최근 청주지검 사건을 계기로 감찰권 이양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노대통령이 8월27일 “검찰의 막강한 권력을 감독하겠다”며 검찰의 감찰권 이관을 강력 시사한 것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감찰권 이관 문제에 대한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검찰이 감찰 대상 검사의 계좌까지 뒤져가며 강도 높은 내부감찰을 실시하는 것은 감찰권 이관 문제를 ‘물타기’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해석마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검찰의 감찰권 수호 의지가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개혁 추진 이해 관계자 반발 극복이 과제 강장관이 취임 초기 검찰의 제자리 찾기 못지않게 강조한 것이 법무부의 문민화 및 법무행정의 전문화. 그동안 법무부가 소홀히 했던 교도행정과 출입국 관리, 여성 아동 장애자 등 소수자 인권 배려 등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쏟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법무개혁을 주도하는 ‘법무정책위원회’의 한 위원은 “검찰개혁이 시급해서 순위가 밀렸지만 애초부터 강장관은 교도행정 및 출입국 관리 문제를 우선시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은 보호감호제도 등 교정 관련 분야에서도 머지않아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단언했다. 강장관의 소수자 인권에 대한 관심도 주목할 만한 대목. 여성계에서는 최근 호주제 폐지 방침과 맞물리며 ‘여성’ 법무부 장관의 위력을 새삼 재확인했다. 강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호주제는 위헌”이라는 주장을 꾸준하게 밝힐 정도로 여성 및 소수자를 위한 법무 행정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개혁방향 못지않게 확고한 강장관의 법질서 확립 의지 역시 눈여겨볼 대목이다. 조흥은행 및 화물연대 파업, 한총련 사태 등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시험했던 주요 현안에서 강력하게 ‘법대로’를 주장해 야당은 물론 시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에 대해서는 ‘정치’적인 감수성보다는 ‘판사’로서의 원칙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민변의 한 변호사는 “강장관의 장기계획이 마무리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2년 이상의 임기가 필요하다”며 정치권 스카우트 설을 걱정했다. 강장관이 이미 수차례 “정치에 입문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고 밝혔음에도 최근 많은 여론조사에서 ‘법무장관 강금실’은 물론 ‘정치인 강금실’도 높은 상품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강금실만한 대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강금실 체제는 이제 겨우 첫 관문을 통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 검찰을 비롯한 이해 관계자들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강장관이 ‘성공한 법무장관’으로 남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이들의 반발을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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