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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합 뉴스

[시론]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은

 
  

 
[시론]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은
발행일 : 2004-09-08 등록일 : 2004-09-09
[경향신문 2004-09-08 19:51]

〈진선미 변호사〉

‘그게 정말일까.’ 얼마 전 한나라당이 호주제 폐지에 관한 권고적 찬성 당론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실감이 영 나지 않아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다. 이제 정말 그 길고도 지루한 논란의 끝이 보이려나보다. 일제에서 해방된 이래 최초의 민법이 마련될 당시부터 반세기 동안 줄기차게 문제를 제기해온 열정에 힘입어 2001년 법원이 호주제에 관한 위헌성을 인정해줌으로써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이 계류 중이다.

2003년 5월에는 호주제 폐지를 담은 의원발의안이, 같은해 10월에는 정부발의안이 국회에 상정되었는데 16대 국회가 폐회하는 바람에 자동폐기되었다가 지난 6월 법무부가 서둘러 동일한 내용의 정부발의안을 국회에 다시 상정했다.

호주제란 법이 나서서 형식적으로 하나의 가(家)를 상정하고, 그 구성원을 호주와 가족으로 구분하는 제도이다. 즉 같은 호적에 있으면 가족이고, 아니면 가족이 아니다. 그래서 둘째아들이 어머니를 계속 모셔도 어머니는 둘째아들의 가족이 아니다라는 황당한 결론이 나온다. 이렇듯 호주제는 현실적인 가족공동체를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족의 유대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할 수 없다. 반면 호주제로 대변되는 권위주의적 가족질서가 민주주의적·수평적 사고방식, 자기결정권에 대한 강력한 자각 등 가족구성원들의 의식변화를 수용하지 못하면서 가족 해체현상이 증폭되고 있다.

-장·단점 따른 선택의 문제-

호주제가 폐지되면, 그럼 대안은 마련되었나. 여기서 대안이란 호주와 가족의 구분이 없어지면 종래 ‘호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이미 대안에 대한 연구는 충분하다. 문제는 선택이다(대안의 명칭은 모두 가칭이다). 우선 두 가지의 방안이 있다. 사람을 기준으로 하여 여러 명을 묶어놓을 것인지, 아니면 개별적으로 작성할 것인지에 따라 ‘기본가족별 신분등록부’와 ‘개별 신분등록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최근 이른바 ‘사건별 신분등록부’ 방식이 제안되었는데 이는 혼인, 출생, 사망 등의 신분변동 원인별로 신분등록부를 작성하는 방식이다.

‘기본가족별 신분등록부’는 부부와 미혼자녀를 기본단위로 하여 신분등록부를 만드는 방식이다. 가족구성원이 혼인하거나 아이가 생기면 반드시 새로 신분등록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할아버지와 손자는 같은 호적에 있지 못한다. 부부와 자녀는 하나의 공부에 기재되어야 한다는 통념에 부합하며, 가족관계를 신속하고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반면 호주를 대신하는 기준인 등 별도의 색인기능을 갖추어야 하고, 이적·이기 업무가 필요하며, 혼인과 관련하여 자녀를 어느 호적에 기재할 것인지가 복잡해지는 등의 단점이 있다. ‘개별 신분등록부’는 말 그대로 개인별로 신분등록부를 만드는 방식이다. 급격한 변화가 필요해 국민정서에 쉽게 부합하지 않고, 친족관계를 파악하기 위한 절차가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따로 신분기록의 색인기능을 마련할 필요가 없고, 자녀를 부모 중 누구에게 기재할 것이냐라는 복잡한 문제가 없고, 이적·이기 등이 필요없기 때문에 절차가 매우 간편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이나 영국 그리고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교회법의 발전에 따라 대부분 사람을 기준으로 하지 아니하고, 혼인부·출생부·가족부 등 사건별로 여러 개의 신분등록부를 작성, 활용해오고 있다. ‘기본가족별 신분등록부’는 현재 일본만이 활용하고 있는 제도이다. 일본은 수십년 전에 호주제를 폐기처분하면서 ‘개별 신분등록부’로 바꾸지 못하고 ‘기본가족별 신분등록부’를 마련한 이유가 오로지 돈이 없어서였다고 밝히고 있다.

-‘개별 신분등록부’ 바람직-

대법원은 호적을 모두 전산화하여 법원행정처 산하 호적전산정보 중앙관리소에 파일로 보관하고 있다. 따라서 종래 호적을 변경하는 작업은 매우 적은 비용으로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호적은 공적 기록부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떻게 변경할 것인지는 오로지 기술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개별 신분등록부’가 그 답이다. 가족의 유대 강화, 가족윤리는 더 이상 신분등록부가 보장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님을 우리 모두 자각하고, 새로운 시대의 가족문화를 열어가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