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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시평]밝은 지혜, 여성주의를 향하여

 
  

 
[기사문] [시평]밝은 지혜, 여성주의를 향하여
발행일 : 2004-04-23 등록일 : 2004-05-03
[한겨레]
  
유학 시절, 한국과 미국을 여러 번도 오고갔었다. ‘타는 순간 한국’이라는 국내 항공사의 서비스 정신은 정말 말 그대로였다. 한국 신문과 티브이 뉴스를 보면서 ‘모국 적응’은 시작되는데, 신문마다 검은 양복의 남자들로 가득한 사진은 내게는 친근하기보다는 숨막히는 것이다. 남자 앵커의 오른쪽에 앉아 기다리는 여자 앵커처럼, 티브이 뉴스에서는 정치와 국가의 ‘주요 사안’에 등장하는 남자들을 10분 이상 지켜봐야 한다. 언젠가 미국에 사는 친구가, ‘한국에서 나이 먹은 여자들은 다 어디에 있어?’라고 물었듯이, 공적 장면에서 등장하는 한국 여자들이란 주로 젊다. 그러고 보니, 한국은 권력 있는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만 보고 싶어 하는 사회인가 보다.

이번 17대 국회의원 총선은 우리들에게 새 ‘그림’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자평한다.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다급해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여성의원을 당대표로, 선대위원장으로 추대하고, 당의 대변인을 여성으로 하면서 오랜만에 드라마 아닌 곳에서 중년 여자들 모습 참많이 보았다. 당당하고 풍부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여성 몸을 가진 정치인들을 보는 것은 한 후배의 말대로, ‘예뻐서 좋았다’.

이번에 선출된 여성 국회의원은 모두 39명, 전체 의원의 13%에 해당한다. 일반적으로 조직 내에서 ‘보통 성원’이 되려면 적어도 30%의 멤버십을 가져야 한다고 할 때, 여성인 국회의원들은 여전히 ‘여성’이라는 기호로 불릴 것 같다.

평소 남녀관계의 불평등을 문제삼고 변화시킬 여성주의 연구자들이 많이 나오기를 바라지만, 여성인 학자들이 여성에 대해 언급만 하면 ‘여성학자’로 호명하는 어법은 잘못된 것이라고 본다. 여성주의 연구를 ‘여성’의 작업으로 여기는 것도 잘못이다. 앞으로 계급에 비견되는 젠더(성별)라는 방대한 조직 원리를 법, 정책, 사회의 분석방법론으로 채용하는 남성인 학자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같은 논리로, 여성 정치인이 ‘여성만을’ 대변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부담스럽고도 이상한 일이다. 장애인 국회의원은 장애인만을 대변하고, 동성애자 국회의원은 동성애자만을 대변한다면, 남성 엘리트 국회의원은 남성 엘리트 인구만을 대변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는가. 물론 소수자들의 누적된 저대표성 때문에 의식적인 대변 노력은 필요하다. 하지만 남성들의 관점에서 보는 사회문제는 인간문제가 되고 보편성을 가지지만, 여성과 남성 간의 문제는 여성문제고 특수성이라는 생각은 편파적이다. 예컨대, 호주제도가 학생들의 번호배치에서, 통장 선임에서, 모든 ‘가(家)’에서 남성이 여성에 우선한다는 이분법적 성차별 논리의 원형이기에 양성문제인 것이지, 여성들만의 문제라는 의미에서 ‘여성문제’는 아니다. 여성정책이란 여성만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아니라, 그동안 대변되지 못한 여성의 입장에서 구축하는, 남녀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 관점이다. 문제는 특정인이 여성을 대변하느냐 남성을 대변하느냐가 아니라, 여성 저대표성 및 남녀차별을 식별해내는 정책 관점이 있느냐 없느냐이다.

하지만 현재 각 당이 내놓는 주요 정책개념을 볼 때, 그런 관점이 있는지 우려된다. 여성주의는 노동, 환경, 의료, 언론, 교육, 도시설계, 가족, 복지 등 모든 분야에 적용되어야 할 시각이다. 또한 여성정책 전망은 하나의 정답을 갖고 있지 않다. 남녀간의 형평을 강조하는 입장도, 여성을 강하게 옹호하는 입장도 있다. 여성주의 접근을 취할 때, 탈식민 과거청산, 일자리 창출, 혹은 문화예술의 새 전망을 열 수 있다. 여성과 장애인 등이 정책수립에 있어 원리의 제공자가 아니라 단지 소수자의 신호가 되어 푯말처럼 꽂혀 있는 것이 비례대표의 의미는 아니리라. 오히려 여성, 장애인, 노동자와 같이 ‘모순이 집약된’ 입장에 설 때, 모두를 아우르는 ‘상생과 개혁의’ 정치 패러다임을 구축할 수 있지 않을까. 소수자의 작은 존재가 큰 진리와 만나고,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는 대승(大乘) 지혜의 원천이 될 수 있기를, 새봄을 맞아 소생하는 만물을 향해 기원하나이다.

양현아/서울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