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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호주제 연내폐지 ‘국회발’ 먹구름

 
  

 
[기사문] 호주제 연내폐지 ‘국회발’ 먹구름
발행일 : 2003-08-18 등록일 : 2003-08-20
[여성신문]739호     2003-08-18 오후 5:43:02          

호주제 연내 폐지작업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 11일 법사위 회의에 참석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호주제 폐지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오마이 뉴스 이종호>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위원장 김기춘)는 11일 제242회 임시국회 첫 전체회의를 열어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중개정법률안을 심의했다. 이미경 의원 등 국회의원 52명이 지난 5월 말 국회에 낸 지 70여일 만의 일이었지만, 남성의원들의 노골적인 반대로 깊이 있는 토론은 이뤄지지 않았다.

법사위원 노골적 반대…처리일정 오리무중
여성계 법사위 의원 대상 일대일 설득할 터

법사위는 민법개정안이 이날 회의에 처음 안건으로 올랐고, 처리할 안건이 여럿 남아있다는 점 때문에 대체토론을 간단히 마치고 개정안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위원장 함승희 외 8인)로 회부, 심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러나 법안소위엔 아직 처리하지 못한 법률안이 무려 84개(9일 현재)나 되고, 주5일근무제나 증권집단소송 등 처리가 급한 의안들이 수두룩해 민법개정안 처리를 언제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법사위 회의를 지켜본 여성들은 남성의원들의 몰이해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연내 폐지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여성단체들은 법사위원 개인을 상대로 한 설득을 계속하면서,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압박작업’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법사위원 호주제 찬반 현황



▲노골적인 반대=법사위원들은 이날 호주제 폐지가 여성계는 물론, 국민적 공감대를 넓히고 있는 사안이란 점은 인정하면서도, 갖가지 근거를 들이대며 대부분 폐지를 반대했다. 전통과 관습으로 뿌리박은 호주제를 갑자기 없애면 사회적 혼란이 일어난다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이미경 의원은 제안설명에서 “전세계를 통틀어 남성의 가부장적 권위를 법으로 인정한 나라는 대만과 우리뿐”이라며 “성비 불균형, 출산율 저하의 원인으로 꼽히는 민법을 이제는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심규철·김학원 의원 “폐지 반대”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충북 보은)은 “호주제는 그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원칙이며, 그동안 부계원칙을 지켜오면서 혼란이 있었냐”며 “가뜩이나 가정해체가 심각한데,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면 또 다른 분란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이혼·재혼가정이란 소수 예외 때문에 원칙을 고치자는 거냐”며 “우리는 자동차 우측통행을 하고 있는데, 몇몇 사람이 갑자기 좌측통행을 하자고 하면 그렇게 할거냐”고 강변했다. 이 의원이 “법률이 양성평등을 저해하고 있는 것을 고치자는 얘기”라고 거듭 설명했지만, 심 의원은 “여성운동가들이 극단적인 경우만 부각시킨다”며 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자민련 김학원 의원(충남 부여)은 “호주제 폐지론에 엄중경고한다”고 엄포를 놓은 뒤 “성씨는 삼국시대부터 내려온 것으로, 호주제 폐지와 남녀평등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순간 방청석에선 실소가 터지기도 했다.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강원 동해·삼척)은 “지금 지방에선 여성 유림들이 호주제 폐지에 반대해 일어서고 있다” “여성단체들이 호주제 문제와 총선을 언급하는 데 이는 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경 의원은 이날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나란히 앉아 남성의원들의 ‘공격’을 막았다. 이 의원은 법사위원들의 논박과 추궁에 여유 있게 사례까지 들며 답을 했다. 강 장관도 “법무부가 대안을 만들고 있지만, 이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대로 해도 아무 문제없다”며 이 의원을 도왔다.

이 의원과 강 장관의 ‘합동작전’에 머쓱해진 남성의원들은 서둘러 질의를 마쳤고, 김기춘 위원장은 안건을 법안심사소위로 넘겼다.

의원들의 토론에 앞서 민법개정안 검토보고를 한 박성득 전문위원도 사실상 반대에 가까운 의견을 내놨다.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는 보통 찬반 양쪽 의견을 가감 없이 정리한 뒤, 해당 법안의 법률상 문제나 절차를 ‘조언’하는 게 관례다.

박 전문위원은 검토보고에서 “부계혈통주의에 입각해, 호주를 중심으로 하는 가족제도는 우리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제도”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견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각 계층의 의견을 수렴해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찬성 4, 반대 4, 유보 7

▲법사위원 의견=법사위원 15명(한나라 8, 민주 6, 자민련 1) 가운데 민법개정안 처리에 찬성의견을 보인 이는 민주당 조배숙·천정배·이상수 의원,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 등 4명뿐이다. 조·천 의원은 민법개정안 공동발의자이고, 이·원 의원 두 사람은 그동안 찬성 의견을 꾸준히 내놨다.<표 참조>

유일한 여성 법사위원인 조배숙 의원(비례대표)은 본지가 최근 법사위원들에게 보낸 물음에 대해 “양성평등 이념에 맞는 가족제도를 구현하기 위해 호주제는 당연히 없애야 한다”며 “위원들이 걱정하는 신분등록 대안은 1인1적제가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이는 한나라당 심규철·최연희·김학원·최병국 의원 등 4명. 심·김·최연희 의원 등 세 위원은 11일 법사위에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며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내놨다. 한나라당 함석재 의원(충남 천안을)은 신분등록제 등 대안을 놓고 민법개정안 처리를 고심하고 있는 눈치여서 막판에 개정안 처리에 찬성으로 나설 가능성도 있다.

여성계, “총선과 연계”

나머지 위원 5명은 아직까지 결정을 내리지 않고 당론과 여론의 흐름을 지켜본 뒤 최종 결정을 하겠다는 태세다.

김기춘 위원장은 지난 5월 “(폐지를) 장담할 순 없다”는 의견을 나타낸 뒤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처리 전망=국회 상임위원회가 법률안을 처리하는 데 아무리 빨라도 서너 달이 넘는 점을 감안할 때, 민법개정안을 올해 안에 처리하리란 전망은 어둡다. 더욱이 법사위원들이 하나둘 반대의견을 드러내고 있어, 시간을 더 끌 게 뻔하다. 법사위가 처리해야 할 의안도 이미 80여 개가 넘는다.

다만,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이르면 다음달 신분등록제 대안 등을 포함한 정부입법안을 내기로 한 만큼, 9월 정기국회 때 논의가 급물살을 탈 수도 있다.

민법개정안에 대한 찬반 의견은 현재 4대 4. 나머지 7명 의원의 의견이 관건인데, 밀린 의안이 많고 총선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떠올리면 아무래도 시간이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배숙 의원은 “법사위원들이 지역에서 선거를 의식, 심사가 원활하게 이뤄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법무부가 대안을 낼 예정이라고 하니 입법과정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여, 연내는 아니더라도 조속히 폐지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오경숙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법사위에 우리편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면서도 “의원 일대일 작업 등을 통해 반드시 여성계 숙원을 관철시키겠다”고 말했다.

배영환 기자ddarijoa@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