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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이 가족이 사는법]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네

 
  

 
[기사문] [이 가족이 사는법] 영화평론가 심영섭씨네
발행일 : 2003-11-03 등록일 : 2003-11-05

평등 속 평화 가꾸는 `재혼가정`
서로가 과거 존중…일에 대한 간섭도 안해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한 부부대화 끝없을것"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

아직 국회에서의 의결 절차가 남아 있지만, 지난달 28일 호주제 폐지 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을 때 영화평론가 심영섭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우리 집은 호주가 셋이거든요. 이혼해 10년간 아들을 혼자 키워온 저와, 열 살 아들의 호주인 전 남편, 그리고 현재 남편의 호주인 시아버지입니다.”

1년 전 새로 태어난 딸아이로 인해 성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게 된 심씨의 남편 남완석(우석대 영화학과) 교수 역시 가족의 개념을 부계의 혈통에서 벗어나 생계를 위해 한집에 모여 사는 사람들로 확대규정한 것에 만족해 했다. “물론 이전에도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이제야말로 상우의 진짜 아빠가 된 것 같아 기분 좋습니다.”

전형적인 스텝 패밀리(step family·재혼가정)로서 이들 가족이 사는 방법은 특별하다.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재혼가정이란 사실을 당당히 드러낸다. 자녀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상우는 헤어진 아빠와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난다.

남 교수 역시 헤어진 아내가 키우는 딸을 언제든 만나고, 휴대폰 메시지로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는다. 아이들 교육문제를 전 남편, 전 아내와 상의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칫하면 (예전의) 아빠가 산타클로스가 되기 쉬우니까요. 아이의 모든 요구와 응석을 받아줄까 봐 언제고 전화로 부탁합니다. 무조건 놀아주지 말고 숙제를 하게 도와달라,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지 말라고요.”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부부의 의지 덕분에 상우의 얼굴엔 그늘이 없다. 현재의 아빠에게 예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고 남 교수 역시 스스럼없다. 자녀교육에 대한 입장은 방임형인 아내와 다르다. “생후 1년 만에 아빠와 헤어진 데다 일로 바쁜 엄마 밑에서 자란 상우에겐 아버지에 대한 역할모델이 없어서 제가 더욱 노력합니다. 밥 먹는 예절부터 이 닦는 습관까지 엄격하게 가르치지요.”

2년 전 재혼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종류의 성격을 지녔다. 영화광인 부모 밑에서 자란 심씨가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데다 다소 덜렁대는 여자라면, 가부장적인 공무원 집안에서 자란 남 교수는 꼼꼼하고 약속시간에 절대 늦지 않는 섬세한 남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혼을 결정한 건, 성공적인 결혼생활은 톱니바퀴처럼 딱 들어맞는 성격을 지녔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상대방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되 서로의 장점을 북돋워주는 노력과 배려에 있음을 한 번의 실패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이들 부부를 견고하게 이어주는 끈이다. 화롯불 같은 사랑이 아니라, 밤이 새도록 영화에 대해 논쟁을 벌이며 우정과 신뢰를 쌓아온 이들은 금반지 하나씩 주고받은 뒤 다시 한번 ‘모험’을 감행했다. 그만큼 서로의 과거를 존중하고 평등하게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우석대는 전주에 있지만 대전에 거주지를 마련한 것 역시 서울부터 부산까지 자신의 전공인 심리학과 영화비평 강의를 위해 떠돌아야 하는 아내를 위한 남편의 배려. 서로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영화에 대한 심리학적 비평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심영섭씨에게 남 교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다. “영화를 이성과 논리로 날카롭게 분석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라 영화를 다분히 감성적으로 받아들이는 저의 비평에 균형을 잡아주거든요.”

싸움 자체보다는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어지는 게 결혼생활의 적신호라고 믿는 이들은 그래서 낙관적이다. 이 땅에서 영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부부 사이의 대화도 끝이 없을 터. 재혼을 고민하며 상담을 청해오는 사람들에겐 ‘지브롤터의 바위’처럼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을 찾았다면 기꺼이 도전해보라고 권한다. “서로에게 힘이 돼주고 방향을 제시해주는 사람이니까요. 아이들이 걱정이라고요? 아이 역시 새로운 배우자만큼이나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면 됩니다.”

(김윤덕기자 sion@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