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료창고/보도자료

[기사문] 호주제폐지 5회 릴레이기획 ①호주제 폐지 어디까지 왔나(1)-여성계

 
  

 
[기사문] 호주제폐지 5회 릴레이기획 ①호주제 폐지 어디까지 왔나(1)-여성계
발행일 : 2003-05-20 등록일 : 2003-06-05
“더이상 늦출 수 없다”

정부가 ‘호주제 폐지추진기획단’을 설치해 5월 16일 첫 가동에 들어가며, 호주제 폐지를 공식화시킨 가운데 여성부 홈페이지에는 호주제 찬·반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호주제는 무엇이고, 폐지는 가능한 것일까. 본지는 5회에 걸쳐 호주제 폐지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여성계는 2000년대 들어 3·8여성대회를 통해 꾸준히 호주제 폐지를 요구했고, 이런 목소리들이 일반인들에게도 전달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열린 3·8여성대회 가두행진 모습. <사진/장철영 기자>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에 참가한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일부 분과 참여보다는 전체분과의 적극적인 참여를 원해 향후 이들의 역할이 주목된다.

정부는 지난 16일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여성부 대회의실에서 ‘호주제 폐지 특별기획단’ 첫 회의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는 참여 인사들의 상견례와 추진단의 향후 운영방법 등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4개 분과(총괄기획·법제정비·홍보·국민참여) 중 국민참여 분과에만 단체들을 참여시킨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의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가한 고은광순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이하 호폐모) 운영위원은 “회의에 참여한 단체들이 국민참여 분과에만 단체를 몰아넣은 것에 대해 반발이 거셌다”면서 “분과모임에서 각 단체들은 공동 분과대표와 다른 분과에 참여할 단체를 선정해 여성부에 이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이 다른 분과의 참여를 원한 것은 그동안 호주제 폐지 운동에 앞장서온 노하우를 살려 법정비 단계부터 참여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단체들은 국민참여 분과장에 한국여성단체연합과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공동 분과장으로 선출했다. 또 총괄기획분과에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법제정비분과에 한국가정법률상담소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홍보분과에 호폐모의 참여를 여성부에 적극 요구하고, 다음 기획단 회의에 참여안을 관철시킬 계획이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추진 일정과 관련해 법무부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정부안을 내놓을 것이며, 다음 전체회의에서 대략적 추진 일정을 보고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에서는 호주제와 관련한 불평등한 법률들을 정비해야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민법을 먼저 개정하자는 데 참가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또 호주제 폐지 이후의 새로운 호적제도에 관해서는 현행 거론되는 모든 대안(가족부, 1인1적제 등)을 검토하기로 했다.

자영업을 하는 도웅준씨는 재혼한 아내가 데려온 딸의 성(姓)을 바꾸기 위해 딸의 초등학교 입학을 1년 간 미뤘다. 하지만 도씨에게 돌아온 것은 성 변경 불가 판정. 재혼한 아내의 딸을 친딸처럼 생각하고 있는 도씨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었다.

도씨는 “딸아이가 성장한 다음 혼인을 하게 될 경우 성이 달라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재혼한 지 5년째인 김희실씨도 지금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과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의 성이 달라 고민에 빠졌다. 남매이면서 성이 달라 병원에 갈 때도 딸아이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김씨는 “주민등록상에 딸아이는 자녀가 아닌 동거인으로 되어 있다”면서 “딸아이를 친자식처럼 아끼는 지금의 남편도 이 문제로 몹시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2년 전 재혼을 한 최모(46)씨도 사정은 마찬가지. 최씨는 자신의 아들이 지금 남편과 성씨가 달라 학교에서 놀림을 받는 것 때문에 속이 상한다. 최씨는 “친부의 성과 새 아버지의 성이 달라 아이들이 무척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면서 “새 아버지가 원할 때 아이의 성을 바꿀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렇듯 재혼한 여성이 동반한 자녀들의 경우 친부의 성을 따르는 호주제로 인해 피해를 겪고 있다.

여성계는 호주제가 가족관계를 권위주의적이며 종적인 관계로 비쳐지게 하며, 이것은 전적으로 남성우월주의 사고방식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남성 중심적·남녀차별 조장



여성계가 주장하는 호주제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호주제는 부계우선 혈통주의와 남성우월의식을 조장해 성차별을 발생시키며, 민법은 호주승계 순위를 아들-딸-처-어머니-며느리의 순으로 규정해(민법 제984조), 남자 어린이가 할머니·어머니보다 우선적으로 호주가 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이는 남아 선호사상을 고착화하며, 남성우월을 상징하는 것으로 양성평등에 위배된다.

또 호주제는 현대판 ‘삼종지도’로 여성을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하고, 자녀가 출생하면 아버지의 성본(姓本)을 따르고 예외적으로만 어머니의 성본을 따르도록 해 성에 관한 부부의 동등한 권리를 규정하고 있는 UN여성차별철폐협약에 반하고 있다.

여성은 이혼 후 자녀에 대한 친권 및 양육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자녀들을 자신의 호적으로 옮길 수 없다. 또한 어머니와 호적을 함께 하던 자녀도 아버지가 자녀를 자신의 호적에 마음대로 옮겨 올릴 수 있다.

얼마 전 결혼한 최모(35)씨는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 받으러 갔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호적등본에 자신이 모르는 사람이 1달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아들로 등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8년 전 어머니 몰래 외도를 한 아버지가 당시 동거를 했던 여인과의 사이에 아들을 낳아서 기르고 있었던 것.

최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 변호사를 통해 이복동생을 호적이 입적시킨 것 같다”며 “전혀 모르고 있던 동생이 나타나 유산 상속과 관련해 법적인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계는 호주제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와 남녀차별의식을 조장하고, 제도화하는 것으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을 보장하고 있는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도 호주제는 중국의 종법제와 일제 식민지 시대의 군국주의적인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우리나라의 고유제도는 아니라는 것이 여성계의 설명.

이러한 여성계의 주장에 대해 일반 국민들도 호주제 폐지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1년 11월 여성부가 조사한 국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혼한 여성 동반자녀의 성을 ‘친부의 동의 없이 호적에 올릴 수 있다’는 의견이 71.5%로 나타나 현행 호적편재의 개선이 절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호주제의 가장 큰 쟁점이 되는 이혼 후 자녀의 호적문제에 대해서는 ‘양육자의 호적에 올려야 한다’는 의견이 77.5%로 높게 나타났다.

‘장남에게 호주의 우선 순위를 부여하는 호주승계’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어본 결과, 응답자의 74.3%가 ‘장남보다 연장자인 아내가 호주를 승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현행 호주승계 순서가 남아 선호사상을 부추길 가능성’에 대해서도 75.8%가 ‘그렇다’고 동의했다. ‘호주 승계의 순서를 가족이 결정할 수 있도록 법에 명시하자’는 의견도 52.9%나 찬성을 표시했다.

호주제 개선을 요구하는 응답자 75.7%는 ‘호주제가 효의 실천과 무관하다’고 답했으며, 71.9%는 ‘호주제가 없어진다고 가족이 붕괴되는 것은 아니다’고 답했다. 또 전체 응답자의 47.5%는 호주제의 폐지 또는 수정·보완을 요구했다.

재혼가정 58.1%“자녀姓 고통”

또 2002년 1월 한국여성개발원의 ‘재혼가족의 적응실태와 지원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재혼가정의 58.1%는 본인이나 부인의 친자녀의 성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15.4%가 재혼가족을 보는 교사의 편견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여성계는 꾸준히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며, 2000년대 들어 3·8여성대회를 통해 호주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일반인들에게도 전달되기 시작했다.

1957년 민법 제정 시부터 진행돼온 호주제 폐지운동은 3회에 걸친 가족법 개정의 성과를 보였으며, 한국가정법률상담소를 주축으로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를 결성했다.

‘시민연대 결성’기폭제 작용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는 2000년 9월 국회에 호주제 관련 법조항의 개폐에 관한 청원을, 2000년 11월 호주제 위헌소송을 제기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이다.

최근에는 호주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민법중개정법률안’을 마련했다. 민법중개정법률안은 민법의 제4편 친족편 중 제2장 ‘호주와 가족’의 전 조항과 처의 부가입적을 규정한 제826조 제3항과 입부혼 자녀의 성과 본 및 입적을 규정한 제826조 제4항, 그리고 제8장 ‘호주승계’의 전 조항을 삭제하며, 제6장 ‘친족회’ 중 제966조와 제968조를 개정하고, 자녀의 성과 본에 대하여 제865조의 2를 신설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 시민연대는 올 4월 22일 민법중개정법률안에 대해 의원·시민단체·기자들이 참여한 간담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 한국여성단연합, 가정법률상담소,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 등 그동안 호주제 폐지를 주장해온 여성·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추진하는 ‘호주제 폐지 추진기획단’에 참가해 앞으로 호주제 폐지의 문제점과 폐지 후 대안에 대한 목소리를 내게 됐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모임’은 오는 6월 15일 오후 1시부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호주제 폐지에 동참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민법상 호주제란


민법상의 호주제도는 한 집안(家)을 규정함에 있어 호주를 대표로 해 가족을 구성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호주는 일가(一家)의 계통을 계승한 자(호주승계인)나 분가(分家)한 자, 기타 사유로 일가를 창립하거나 부흥한 자 등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국민은 원칙적으로 출생신고에 의해 처음으로 호적에 등재된다. 호적은 혼인·이혼·입양 등 개인의 신분변동사항이 기재되며 호주를 기준으로 정리된다.

이런 국민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공부(호적부)에 등록하여 이를 공증하는 제도를 호적제도라고 한다.

호적은 호주승계의 원칙, 즉 호주제에 따라 편제된다.

호주제의 원칙은 ①피승계인의 직계비속남자 ②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여자 ③피승계인의 처 ④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존속여자 ⑤피승계인의 가족인 직계비속의 처의 순위로 승계된다는 것. 즉, 가족구성원이 어머니, 자신(호주), 아내, 딸, 아들, 며느리, 손자일 때, 자신이 사망하고 나면 호주승계 순위는 아들→손자→딸→아내→어머니→며느리의 순으로 정해져 있어 남성우월주의를 조장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백현석 기자(bhs@iwoma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