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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정동칼럼>호주제 폐지의 당위성 | ||
발행일 : 2003-05-23 | 등록일 : 2003-05-27 | |
[경향신문] 2003-05-23 () 07면 2100자 우리 인간에게 가장 오래된 사회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가족일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 한 공동체를 이루는 가족은 인류 문명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며,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긴밀히 결합돼 있는 만큼 그 어떤 제도보다 강인한 생명력을 가져 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가족은 세상의 거친 바람을 막아주는 보호막, 아무런 대가 없는 애정과 헌신의 공간으로 여겨져 왔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 국가들에서 가족의 의미는 유독 두드러진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국가'라는 말에서 보듯이 나라(國)를 집(家)으로 보는 것이 그 단적인 증거다. 하지만 가족제도에도 그늘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남성 중심적 가부장주의는 그 대표적인 그늘이다. 남녀가 평등하게 가족을 이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우대받아온 게 현실이다. 남녀차별을 잉태하는 가족제도 호주제는 바로 이 가부장제를 유지시키는 법적 제도다. 이 호주제가 폐지돼야 할 이유는 세가지다. 첫째, 호주제는 남성 우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남녀평등권을 침해한다. 민법에 따르면 호주가 사망하면 그 승계는 아들-미혼인 딸-처-어머니-며느리 순으로 이뤄지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런 제도 안에서 자연히 남성은 여성보다도 우위에 있게 된다. 그동안 일련의 민법 개정을 통해 호주의 권한이 명목상으로만 남아있더라도, 남성 우선적인 호주 승계 제도는 법을 넘어서 가부장적 사회의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뿌리깊게 남아있는 남아 선호사상은 바로 이런 제도와 무관하지 않다. 둘째, 호주제는 여성을 남성에 종속되는 존재로 규정함으로써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 평등권을 침해한다. 매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혼인한 여성은 남편 호적에 입적되고 자녀는 아버지 호적에 입적되는데, 이는 명백히 혼인과 가족생활의 평등권을 훼손하는 것이다. 또한 이혼한 어머니와 함께 사는 자녀는 단지 동거인으로 기록되며, 어머니가 재혼할 때에도 기존 호적을 유지할 수밖에 없으니 매우 불합리한 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자녀의 성과 본을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만 인정하는 것도 비민주적이다. 부계 혈통을 우선하고 모계 혈통을 무시하는 이 규정은 대표적인 차별 조항이라 할 수 있다. 이 규정이 갖는 문제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가족을 '정상 가족'으로, 어머니 성을 따르는 가족이나 어머니의 재혼으로 성이 달라진 가족들을 '비정상 가족'으로 보게 한다는 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은 부인의 동의 없이 혼인외 자녀의 입적이 가능한 반면 부인은 남편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규정도 문제다. 이는 부부평등권에 위배되는 동시에 여성의 혼인외 자녀를 차별하는 결과를 낳는다. 호주제가 이렇게 여러 문제들을 갖고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존속시킬 필요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호주제의 대안으로는 '기본 가족별 편제방식'과 '일인 일적 편제방식'이 꼽히고 있다. 전자가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2대의 가족관계를 기록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개인 한명이 자신의 신분등록표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 두가지 가운데 기본 가족별 편제방식이 가족을 중시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일인 일적 편제방식으로 가야 하는 것이라면, 그 중간단계를 건너뛰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과 영국에서 활용하는 일인 일적 편제방식은 사생활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1인1적제' 등 민주적대안 존재 일각에서는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의 해체가 증대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문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로 호주제 유지가 가족의 위기를 낳은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볼 수도 있다. 남녀 불평등이 법적으로 보장돼 있는데 이런 가부장적 제도를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성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호주제와 유사한 제도를 갖고 있다가 폐지한 이웃 일본의 경우 이혼율이 우리보다 낮은 것은 호주제 폐지와 가족의 해체는 적어도 무관하다는 것을 증거한다. 전통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잘못된 전통과 제도는 가능한 한 빨리 바꾸는 게 좋다. 가족이 세상의 거친 바람을 막아줄 수 있는 마지막 보호막이라면, 이 보호막이 인간의 존엄성과 민주적 평등에 기반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가족의 민주화야말로 민주주의의 또다른 출발점이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사회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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