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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인터뷰] 가족법 개정 산증인 김주수 경희대 교수

 
  

 
[기사문] [인터뷰] 가족법 개정 산증인 김주수 경희대 교수
발행일 : 2003-06-03 등록일 : 2003-06-05
“호주제는 족보와 별개 유림도 공부해야”


지금은 일흔다섯 노교수인 김주수 교수(경희대 법과대학)는 젊은 시절 성균관대학 교수로 재직할 당시 유림의 협박공세에 밤낮 없이 시달려야 했다.

유림은 수업중인 강의실에 몰려와 ‘조상도 몰라본다’ 등등의 말로 수업을 방해하기가 예사였고, 총장을 찾아가 ‘저런 교수가 하필이면 성균관대학에서 강의를 하느냐’며 ‘쫓아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그를 붙잡는 학생들을 뒤로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학교를 옮겼다. 그런 혹독한 세월을 거치면서도 김 교수는 호주제 폐지의 목소리를 단 한번도 굽힌 적이 없다.

호주제 존치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일흔다섯의 노교수는 “무조건 호주제 폐지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그들도 공부를 좀 해야 한다”며 따끔한 충고를 들려준다. 평생을 가족법 연구에 몰두해온 김 교수는 “호주제에 대한 오해가 너무나 심각하다”며 인터뷰 내내 답답해했다.


- 5월 27일 국회에 호주제 폐지 법안이 드디어 발의됐다. 어떤 의미가 있나.

“늦은 감이 없지 않다. 그런 노력은 이미 여러 차례 시도가 됐던 것이다.”

- 호주제 폐지가 이렇게 늦어진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호주제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존치론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제도가 무너진다’는 주장을 하는데, 호주제는 우리나라 가족제도와는 관계가 없다. 호주제는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아니다. 아마도 그들은 ‘족보’와 혼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이 둘은 다르다. 민법상의 ‘호주 제도’는 호적편제의 방법이다. ‘족보’는 중국에서 주자학이 들어온 이후 조선시대 후반기 양반을 중심으로 확립된 것으로 부계혈통으로 핏줄이 이어져 내려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 부가(父家) 입적 강제 조항이 논란의 핵심으로 떠올랐는데.

“민법에 ‘자녀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라야 한다’고 ‘강제’돼 있는 것이 문제다. 이미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는 길이 법적으로 열려 있다. 결혼한 딸이 친정의 호주가 되는 경우 남편이 아내의 호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입부혼인’이라 한다. 또 국적법의 개정으로 국제결혼한 부부 사이의 아이는 국적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데, 한국인 어머니의 국적을 선택한 경우 어머니 성을 따를 수 있다. 또, 미혼모의 자녀처럼 아버지가 없는 경우 어머니의 성을 따를 수 있다.”

- 호주제 폐지가 가족해체의 가속화와 사회혼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호주제가 있는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호주제가 없는 국가보다 훨씬 높다. 가족의 해체라는 점에서는 호주제가 있는 우리가 훨씬 심각하다. 어머니 성을 따르게 되면 가족이 해체되나? 아버지 쪽만 혈육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외가도 혈육인데 너무나 편향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반대하는 이들의 주장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 호주제는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것에 대해 설명을 해달라.

“호적제도가 조선시대에도 있긴 했지만 현재의 호적제도와는 다르다. 당시 호구조사를 통해 호적제도를 만들었지만 남자가 중심이어야 한다는 등의 규정은 없었다. 편의상 가장을 ‘호주’를 뒤집은 말인 ‘주호’라고 했는데, 남편이 죽으면 아내가 주호가 됐고 남자를 통해서만 승계돼야 한다는 등의 원칙은 없었다는 것이 경국대전에 나와 있다. 일본이 자기네들의 호적법을 가져왔는데 대한민국 민법을 만들 당시 민법 제정에 참여했던 이들이 일본의 제도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오히려 일본은 호주제가 없다. 우리의 고유문화가 아니라는 점을 바로 알아야 한다.”

- 호주제 폐지에 힘을 싣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계몽’이다. 호주제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유림의 주장은 막무가내 식의 근거도 없는 소리일 뿐이다. 덮어놓고 ‘전통’이라 하지말고 공부해야 한다.”

- 호주제 이후의 대안은 어떤 것이 타당하다고 보나.

“1인l적제나 가족부 둘 다 장단점이 있다. 가족부는 현재 일본, 대만 등에서만 이뤄지고 있는 소수의 방법이다. 현재의 호주제를 크게 변화시키지 않겠다는 것으로 부부 단위로 신분 등록을 하겠다는 것이다. 1인1적제는 유럽과 미국의 방식으로 가족부보다는 개인 중심의 신분등록제다. 처음엔 가족부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1인1적제의 주장들도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둘 사이에 어느 하나로 컨센서스가 이뤄진다면 그 쪽을 따라야 할 것이고, 어느 쪽이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 연내 폐지될 가능성은 있는가.

“반대론자들은 ‘결사항전을 하겠다’는 주장을 하는 등 과격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결국 국회의원들이 움직여줘야 하는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그리 적극적으로 움직이지는 않는 것 같고… 늘 그래왔듯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유진 기자(kyj@iwoma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