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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호주제 폐지 둘러싼 국회의원들 말, 말, 말


 
  

 
[기사문] 호주제 폐지 둘러싼 국회의원들 말, 말, 말
발행일 : 2003-09-10 등록일 : 2003-09-17
호주제 폐지 둘러싼 국회의원들 말, 말, 말
[속보, 기타] 2003년 09월 10일 (수) 23:21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법 중 개정법률안'이 이미경 의원 등의 입법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바 있다. 이 법률안을 둘러싸고 국회에서는 어떤 논의들이 이뤄졌을까. 사실 TV 화면에 비춰지는 국회의원들의 모습만 봐도 한국 정치인들의 수준을 가늠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국회 법사위 회의록(2003년 8월 11일자)을 살펴보니 국가의 정책을 결정하는 국회의원들에 대한 회의적인 의심이 한층 짙어진다.

심규철 의원 “원칙을 바꾸려 하지 말라”


입법발의안에 대한 한나라당 심규철 의원의 발언을 들어보자.


“어느 것이 선이고 어느 것이 악이라고 규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에 따라 자동차 통행을 우측으로 하는 사회도 있고 좌측으로 정하는 사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동차가 우측통행이지요. 일본에 가면 좌측통행을 합니다. 미국도 차량은 우측 통행이고, 어느 것이 선이고 악이 아닙니다. 그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원칙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부모의 성을 부계로 따르도록 함으로 인한 어떤 혼란은 없다고 봅니다. 이것은 단순히 남녀평등적 차원에서 접근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남성중심적으로 결정된 ‘원칙’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데 심 의원은 그 ‘원칙’이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는 시치미를 떼면서 그것이 마치 가치중립적인 사회질서유지 방편인 양 말도 안 되는 비유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심 의원은 호주제가 강요하는 ‘정상가족’ 범주에서 벗어나 소외받는 사람들의 인권을 ‘좌측통행이냐 우측통행이냐’의 문제로 보고 있는 듯 하다. “단순히 남녀평등적 차원”이라니, 그러면 교통법규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말인가?


이에 대해 이미경 의원이 ‘재혼가정이 늘고 있고 자녀의 양육을 다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떨어져 있는 아버지에 의해 제한을 받아야 하는 현실’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자 심 의원은 “예외를 가지고 원칙을 바꾸려고 하면 안되거든요”라며 말을 잘랐다.


“예외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 사회의 본과 원칙을 바꾸려고 하는 것은 마치 꼬리를 가지고 몸 전체를 흔들려고 하는 것과 같지 않느냐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남녀평등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고 그 사회의 질서를 세우는 원칙을 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일본이나 영국에서 오래 살다 온 사람을 위해서 자동차를 좌측으로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합당한 얘기입니까?”


많이 들었던 소리다. 지난 5월 30일 YTN에서 열렸던 호주제 폐지 관련 토론회에서 "호주제가 이혼녀에게 불리하다고 '가'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것은 교통사고 당한 사람이 불쌍하다고 전 국민을 병신 만들어 똑같이 평등하게 하자는 주장과 같다"는 수준이하의 차별적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 구상진 변호사의 논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너무나 간단히 주장하는 ‘원칙’이 다른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칼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라보지 않는 것이다. “병신”이거나 “예외”라고 치부해버릴 뿐.


남녀평등과 무관하다? 본질 호도하는 국회의원들


“저는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우리 사회가 그렇지 않아도 가정 해체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미 성과 본 문제 가지고 부부간에 의견대립이 생길 정도면 이미 파탄된 가정이지요. 저는 우리가 만들지 않아도 될 제도를 만들어서 가정의 갈등요인, 분란원인을 만든다면 잘못된 입법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호주제 폐지의 근본적인 이유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심 의원은 급기야 일어나지도 않은 남의 집 부부싸움 걱정까지 한다. 심 의원은 결국 가정해체가 걱정됐던 모양이다. 가정해체가 그렇게 걱정된다면 호주제 폐지 후 발생할(?) 부부 간 갈등보다는 그가 원칙이라고 믿는 부계성 중심의 ‘정상가족’이 개인을 억압하고 있는 지점을 먼저 면밀히 살펴보는 편이 훨씬 유효할 것이다.


자유민주연합 김학원 의원 역시 “호주제 폐지문제는 남녀평등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이 저의 확고한 생각입니다”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현란한 비유를 들었다.


“가령 김학원이라는 사람의 어머니가 중학교 때 이혼해서 이씨 집안으로 재혼해 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서 성을 변경해서 이씨가 되었어요. 또 고등학교 때 조씨 집안으로 재혼을 했어요. 대학교 때 최씨 집안으로 또 재혼을 했습니다. 재혼한 사람이 또 한번 재혼하지 말라는 법 없지요…그래서 초등학교 동창회 가면 “어, 김학원이 오랜만이야”, 중학교 동창회 가면 “어, 이학원이!”, 고등학교 동창회가면 “어, 조학원이!”, 대학교 가면 “최학원이!” 이럽니다.”


호주제 폐지의 중심은 ‘성씨 변경’이 아니다. 재혼할 때마다 성씨 변경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이혼 여성들의 요구가 아니라는 얘기다. 다양화되고 있는 가족관계, 공동체, 개인들의 인권과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또한 부계성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이 낳고 있는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다. 그런데 김 의원은 호주제 폐지를 ‘성씨 변경’에만 초점을 둬 극단적인 예를 들면서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한나라당 최연화 의원 역시 “호주제도가 우리나라 전통과 관습에 상당히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시지요?”하고 재차 질문하면서 “지금 유도회에서는 여성유도회원들을 모집해서 엄청나게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현상을 볼 때, 아직도 호주제 폐지에 관해서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 미흡하다는 감을 느끼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정부안이 나와보면 이미경 의원님 안보다는 조금 낫겠네요? 너무 일방통행이 아니고”로 결론을 맺었다.


결국 하나같이 이들의 주장을 관통하는 것은 호주제가 전통이고 관례이며 원칙일 뿐, 남녀평등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국민들은 그 ‘전통’과 ‘관례’ 혹은 ‘원칙’이 남녀평등에 위배되며, 많은 이들을 소외시키는 반인권적인 제도라고 목소리를 모아왔다. 그러나 정작 정책결정권자인 국회의원들 중에 문제의 출발선조차 찾지 못하고(혹은 눈 감고) 있는 이들이 있어, 호주제 폐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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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문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