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 [호주제 폐지되면] 남성 우위시대 법적으로 끝 | ||
발행일 : 2003-08-22 | 등록일 : 2003-08-22 | |
[속보, 사회] 2003년 08월 22일 (금) 06:12 [중앙일보 문경란 기자] 호주제 폐지는 가족 문화 등 국민생활에 큰 변화를 불러 올 전망이다. 특히 호주 승계와 깊은 연관이 있는 남아 선호 사상이 약화되고 여아 낙태와 성비 불균형의 사회적 문제도 점차 해소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여성계는 그동안 호주제가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동떨어진 후진적인 제도라고 주장해 왔다. 호주제는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하고 여성은 늘 남자에 의존하는 종속적 존재'라는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호주제가 부계 우선주의.남계혈통 계승을 강제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행복추구권 및 평등권을 침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내려오던 호주제가 폐지될 경우 '가족'의 정체성을 두고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개인주의가 확산되고 이혼 등을 조장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유림 등에서는 공동체의식이 무너질 것으로 우려한다. '호주'가 사라진다=호주제의 폐지는 무엇보다 집안의 기둥으로 비유되던 '가장'의 개념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호주제에서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이 구성됐다. '호적을 파가라' '출가외인' 등의 말은 집안의 주인인 호주로부터 호적을 옮긴다는 것을 뜻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가장인 '호주'가 없어지고 개별 구성원들은 법률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갖게 된다. 이 경우 어린 아들.손자가 어머니.할머니를 대신해 호주가 되고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간다는 비현실적인 상황이 사라진다. 현행 호주제에서는 아들 우선 승계 원칙에 따라 어린 아들.손자가 실질적 가장 노릇을 하는 어머니.할머니를 두고 법률적으로 '가장'노릇을 해왔다. 이런 호주제가 폐지되면 호주를 기록한 호적제도도 달라진다. 호적에는 '호주'를 중심으로 가족 구성원 모두의 신분변동 사항이 기록됐다. 호주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기재해 지위가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4인 가족의 경우 4명 모두가 개별 신분등록 기록을 갖게 된다. 부모.배우자.자녀는 기록되지만 형제.자매는 적지 않아 알 수 없다. 형제.자매를 알기 위해서는 부모의 신분등록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 자녀 성도 바꾼다=법무부의 민법 개정안 가운데 또 하나 주목할 만한 것은 고통받는 재혼 가정 및 이혼 가정 자녀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이다. 그동안 재혼한 엄마를 따라 사는 자녀의 경우 새아버지의 호적에 올릴 수는 있었지만 성은 바꿀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새아버지와 성이 달라 호적등본.주민등록등본 등에 재혼 가정이라는 점이 노출됐다. 이를 감안해 개정안은 자녀의 복리를 증진할 경우 가정법원의 판단에 따라 자녀의 성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이혼 가정의 경우도 해당된다. 어머니가 친권과 양육권을 갖고 자녀를 키우고 있는 경우도 자녀의 호적은 아버지의 호적에 올라 있었다. 비자 등 서류를 발급받을 때나 이력서 등을 쓸 때 함께 생활하지 않는 아버지를 호주로 기재해야 했다. 하지만 '개인별 신분등록제'로 바뀌면 자녀가 개별 기록을 갖게 되고 호주를 적는 일 등이 사라지게 된다. 입법 전망=그동안 호주제 폐지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여온 법무부는 곡절 끝에 혁신적인 내용을 담은 이 법안을 만들었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간다. 그러나 많은 국회의원들은 내년 4월로 다가온 총선에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입장 표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저울질하며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서둘러 9월 정기국회에 법안을 상정해도 연내 통과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문경란 기자 moonk21@joongang.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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