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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호주제와 가족

 
  

 
[기사문] 호주제와 가족
발행일 : 2003-08-27 등록일 : 2003-08-27
호주제와 가족/ 장호균  

호주제 폐지와 개인별 신분등록제 도입을 담은 민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될 것으로 알려지자,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폐지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호주승계의 남녀 차별, 여성이 혼인할 때 부가(夫家) 입적의 차별, 재혼 가정 자녀의 성(姓) 문제, 이혼 가정 자녀의 거가 동의권 등의 불합리에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을 듯싶다. 진료 현장에서 체험하지만 호주제 문제로 선의의 피해자가 겪었을 고통은 당사자 아니면 상상하기 어렵다.

무엇이 가족을 위협하나

폐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호주제의 틀을 유지하더라도 앞서 열거한 차별 요소들을 폐지하고 현실적인 문제점을 보완하는 제도 입법을 통해서 불합리를 해소할 수 있다는 ‘수정론’도 상당수 존재한다. 폐지 반대의 핵심은, 호주제는 차별 요소 외에도 근본적으로 ‘가족 관념’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호주제의 틀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반면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호주승계 포기 제도, 부가 입적의 예외조항 입부혼, 친양자 제도와 같은 보완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한계점을 논거로 든다. 무엇보다 폐지 논리의 중심은 호주제가 ‘가부장제’의 상징으로서 남녀 불평등의 고통을 강요해왔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법과 제도는 완벽하지도 고정불변하지도 않다. 호주제가 부모 부양이나 자식 양육의 의무, 재산 상속, 존속 범죄 등의 최소한의 법적 기준이 되는 만큼 제도를 폐지하면 당연히 법논리적 공백을 보완해야 하고, 새로운 제도 선택에 따른 비용과 또 다른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호주제 존폐의 논리는, 공통적으로 우리 사회의 가족 해체 심화를 각각의 논거로 삼고 있다. 폐지론은 이혼이나 재혼 가정, 독신자, 혼외 자녀 등 새로운 가족 관계나 형태가 나타나므로 ‘가족부’보다는 ‘개인별 등록제’가 합당하다는 논리이고, 폐지 반대론은 ‘법적 가족 개념’의 폐지는 가족 해체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족 해체의 심화는 어제 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이혼이 반드시 불행과 동의어는 아니지만, 이미 이혼하는 부부의 수는 매일 결혼하는 수의 3의 1 정도에 육박하고 있다. 제도의 변화로 그 영향이 크든 작든 의식에 장기적인 영향을 줄 것은 분명하지만, 호주제의 존폐와 관계없이 가족의 해체 자체는 전반적인 사회적 변화에 따라 진행할 가능성이 크다.

단적인 예로 ‘싱글족’ 독신 여성의 임신과 출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결혼제도와 자녀양육이 분리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문제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윤리적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준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느냐다.

호주제의 존폐 논란이 개인과 가족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도의 하나라고 한다면, 제도적 개선과 함께 가족의 생존조건을 현실적으로 위협하는 요인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알코올중독과 가정폭력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접하게 된다. 알코올중독 가족 문제에 대한 사회적·법적 대책이 미흡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가족공동체의 삶의 질 향상

우리 나라 알코올중독 유병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물론 하나의 원인으로 이혼률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알코올 중독이 상당수의 법적인 이혼과 실질적인 가족공동체 붕괴의 중요한 원인임을 부인할 수 없다.

최근의 한 여론 조사는 호주제 폐지 찬성 여론이 다수라고 보고했으나, 인터넷에서 호주제 관련 토론을 벌이는 네티즌의 반응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호주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법감정’은 과연 어떠할까? 호주제의 개혁에는 찬성하지만, 앞으로 법적 ‘가족 개념’의 폐지는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호주제 폐지 찬반 논란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에 앞서 가족에 대한 가치관과 가족공동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을 먼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장호균 | 신경정신과 전문의  

한겨레21   2003-08-27 12:3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