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 한나라당 장외투쟁은 '남는 장사'? | ||
발행일 : 2003-11-28 | 등록일 : 2003-12-02 | |
[오마이뉴스 장흥배 기자]최병렬 대표의 단식 투쟁과 소속 의원들의 사직서 제출 등의 모습만 보면 한나라당은 대통령의 특검법 거부권 행사가 한나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대국민 제스처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국회 상임위와 특위, 본회의에 계류 중인 법안들의 성격을 놓고 봤을 때는, 한나라당의 '파업'과 그로 인한 각종 법안 논의의 파행과 지연이 한나라당으로선 전혀 '밑질 게 없는' 선택으로 보인다. 정치권이 올해 말까지 입법을 마무리짓기로 시민사회에 약속한 정치개혁 법안, 노무현 정부의 핵심공약인 국가발전 3대 특별법안,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와 맞닿아 있는 각종 조세·기업 관련 법안 등은 그간 한나라당이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지며 훼방을 놓았던 법안들이고, 이들 법안이 표류하게 됐기 때문이다. 좌초 위기에 처한 각종 개혁법안 한나라당의 강경투쟁으로 가장 타격을 입을 법안은 정치관계법 개정안이다. 이번 정치관계법 개정안은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비례대표 의석비율 조정 등 선거제도의 변경, 정치자금 투명성 강화 등 한나라당으로선 가능한 피하고 싶은 의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들 개혁안에 대해 한나라당은 선거공영제, 법인세 1% 정치자금화, 지구당 폐지 등 시민단체 요구와는 전혀 다른 의제들을 내놓으며 사실상 '지금 이대로'라는 속내를 공공연히 표시해왔었다. 참여정부의 핵심공약인 국가균형발전 특별법안들도 한나라당으로선 '미룰 때까지 미루고 싶은' 법안들이다. 최근 국회 '신행정수도건설특위' 구성을 무산시킨 뒤, 충청권 민심을 등에 업고 당사를 찾은 충청지역 자치단체장과의 면담에서 최병렬 대표는 특위 구성을 약속했었다. 그러나 특검 정국에서 최 대표의 약속이 지켜질 지는 의문이다. 국회 건설교통위 소속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27일 의결될 수 있었던 행정수도이전 법률안이 한나라당의 보이코트로 무기한 연기됐다. 건교위 논의가 재개된다면 법안 통과는 큰 문제없는데 국회 특위 구성은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신행정수도 건설은 노무현 정부의 핵심정책이기도 하고 내년 총선에서 충청권 득표전략과도 맞물려 있어 한나라당으로서는 정치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지금의 특검 정국에서는 한나라당이 입장을 바꿀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 이명박 서울시장은 한나라당 핵심당직자와 수도권 정치인들을 상대로 수도이전 반대를 위한 집중 로비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5대 국회에서 회기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이번 16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4번이나 무산됐다가 간신히 통과의 불씨를 살린 증권집단소송법 역시 한나라당의 특검 칼바람에 꺼질 운명에 처했다. 참여연대 박근용 경제개혁팀장은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다뤄지지 않을 경우 내년 임시국회에서 다룰 수도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대기업과 재벌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치권이 예민한 법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더 낮아진다고 봐야 한다"면서 "파행 전 정기국회 때도 한나라당의 의지가 미약했는데 이제는 통과심의를 위한 회의 소집 자체가 불투명해졌다"고 설명했다. 여성계의 숙원인 호주제 폐지 역시 한층 어려운 싸움이 됐다는 평이다. 여성연합 이구경숙 부장은 "최근 의원들의 입장을 조사 해보니 20여명이 유보에서 폐지 찬성으로 입장을 바꿔 기대감을 높였다"면서 "만약 16대 국회에서 폐기된다면 정부에서 바로 법안을 재발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위기감을 느낀 여성계가 법사위 등 개별 의원들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펼치고 있지만, 총선 국면으로 갈수록 법안 통과가 어려울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밖에 상속증여세 완전포괄주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밝혔던 세법 개정안, 의문사진상규명위 활동시한 연장, 사회보호법 폐지 등의 법안들도 표류하게 됐다. 절대다수 한나라당으로서는 손해볼 것 없어 물론 국회에 계류될 예정이거나 계류되어 있는 모든 법안들이 한나라당이 반대하거나 미루고 싶어하는 법안들은 아니다. 이라크 파병동의안, 공정위 계좌추적권 폐지, 법인세 인하 등 절대 과반 정당으로서 결심만 하면 관철시킬 수 있는 상당수 법안들도 덩달아 표류하게 됐다. 또 KBS 수신료 분리 징수, 집시법 개악, 테러방지법 신설 등도 이들 법률안의 제·개정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에게는 한 숨 돌릴 여유를 준 셈이다. 그러나 이들 법안들은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으면 임시국회를 통해 언제든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들이고, 특히 파병동의안은 먼저 나서서 총대를 메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어 한나라당으로선 비교적 느긋한 입장일 수밖에 없다. 대표의 무기한 단식이라는 극한 투쟁을 선택한 한나라당이 국회 공전으로 인한 이해득실을 계산하며 '속으로 웃고 있을 수도 있다'는 뼈있는 지적이 제기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장흥배 기자 (hbjang@pspd.org)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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