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 가, 가족, 가족들 | ||
발행일 : 2003-11-28 | 등록일 : 2003-12-02 | |
[한겨레] 호주제도가 폐지되면 ‘가족’의 해체가 촉진될 우려가 있고, 그래서 민법에 ‘가족’을 규정하는 법조문을 두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이 알려졌다. 먼저 분명히 하고 싶은 것은 호주제 폐지론자들은 ‘가족’ 해체를 환영하는 것이 아니라 ‘가’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그러면, 일상 언어에서 혼용되고 또 혼동되는 ‘가’와 ‘가족’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가’(家)와 ‘가족’과 ‘가족들’이라는 가족 다층성을 통해서 호주제 폐지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하는 법무부의 가족법 개정안이 정부안으로 제출돼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호주제도는 민법 제4편 제2장의 ‘호주와 가족’과 제8장 ‘호주승계’를 중심으로, 호주와 가족의 기본적 정의, 가의 변동, 자(子)의 성과 본, 호주승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이를 통해 호주제는 개인의 혼인, 이혼, 부모자녀 관계 등 가족관계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개인과 가족생활이 ‘가’의 관점에서 생각된다는 것이다. ‘가’란 사실적 거주 상태와 상관없는 본적(本籍)에서 호주를 중심으로 편제된 호적(戶籍)에 기록된 가족을 의미한다. 오늘날과 같은 호적제도는 1915년 민적법(民籍法)의 개정을 통해 이 땅에 도입되었고, 호적상의 ‘가’는 경제적·정서적 생활공동체라는 의미에서 가족들(혹은 식구)과는 구별된다. 함께 생활하고 부양하는 한 ‘가족’ 안에는 여러 명의 호주가 있을 수 있고 아예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예컨대 이혼한 여성이 그 딸과 친정어머니와 생활한다 해도 각각 별도의 ‘가’에 속할 수 있고, 이들을 묶어줄 하나의 가란 없다. 장남이 결혼해 그 부인과 자녀와 거주할 때, 이 장남이 굳이 분가하지 않는 한 이 ‘가족’ 안에는 호주가 없다. 호주제는 노동과 자녀양육, 욕망과 갈등의 현장인 가족생활과는 유리된 곳, 즉 서류상에서 존재한다. 그것을 ‘관념상의’ 가라고 하는바, 해체를 우려해야 할 가족이란 삶의 현장으로서의 가족이지 관념상의 가는 아니다. 한국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관념상의 가부장적 가라는 렌즈를 통해 가족생활을 이해함으로써(그 역이 아니라) 가족현장의 요구에는 무관심하고 가족관계의 불균형을 방치해 왔다. 이야말로 가족관계의 해체를 촉진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한편 ‘전통’ 가족이 어느 시대의 가족을 뜻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호주제를 ‘전통’의 관점에서 옹호하는 태도도 있다. 종(宗)이라 불리는 조상제사를 중심으로 한 남계혈족집단에서 ‘전통’ 가족을 찾는다면, 이 이념형적 가족 역시 ‘가’와 다르다. 제사상속자가 우두머리가 되는 ‘가족’이란 최소한 고조(高祖)를 함께하는 제사공동체를 기본형으로 한다. 이 공동체는 혼인과 양자를 통해 씨(氏)가 바뀌고, 호주가 없다면 폐가(廢家)되는 그런 ‘가’와 규모와 성격 면에서 매우 다르다. 하지만 식민지 조선의 관료들은 일본의 ‘이에’(家)제도상 호주를 조선의 제사상속자의 관점에서 해석하였고, 양자간의 차이는 무시되었다. 이러한 해석이 탈식민 한국에서 도전받은 적은 별로 없다. 호주와 제사상속자라는 지위가 합성된 결과, 한국에서 가는 이어야 할 ‘대’를 가진 것처럼 생각되었다. 사회변동과 함께 소규모화된 모든 가에서 적어도 한 명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충족키 어려운 요구가 한국 가족법에 내재되어 있고, 이 부담은 주로 여성들에게 전가되었다. 호주제 속에서 혼인, 이혼, 자녀는 성별에 따라 다른 것을 의미하고, 가족성원들은 무의식적으로 성차별적 감수성을 체득하게 된다. 그래서 호주제 폐지는 단지 이혼, 재혼, 비혈연, 독신, 동성애가구와 같은 다양한 가족들에 대한 배려의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모든 한국인들이 포섭돼 있는 성차별적 조직 방식, 식민지적 자기문화 이해를 허문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해체될 것이 해체되어야 새로운 창조성이 움틀 수 있다. ⓒ 한겨레(http://www.hani.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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