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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어떤 집단의 운동만으로 사회와 문화를 개선할 수는 없지 않은가?

 
  

 
[기사문] 어떤 집단의 운동만으로 사회와 문화를 개선할 수는 없지 않은가?
발행일 : 2003-05-09 등록일 : 2003-05-13

[주장] 호주제 폐지 기획단 구성을 보며

유덕조 기자    


호주제 폐지를 위한 민관 합동 기획단을 구성한다고 한다. 이 기획단의 구성이 정당한 것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합동기구를 구성했다는 사실은 사실 <전대미문>의 일이다. 호주제 페지가 그렇게 중대한 일인가? 옳은 일인가? 좋은 일인가?

그 움직임의 내용과 주장의 어조와 칼라와 성격 또 그 궁극의 목표에 비추어서 보면 이는 단지 성간 세대간의 대립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우선 부당한 움직임일 것이다. 가족과 성씨 가문의식은 패밀리의 힘으로 국가를 건설 영위한 우리 역사의 중심적 보배이다.

물론 대개는 그런 가족사의 의의에 동의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고대사가 아직 정립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한번 효를 중심한 강고한 사상사를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대륙의 역동적 환경을 뚫고 나왔던 한국사 초기를 힘을 상념해 보면 역시 수긍할 수 있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족의 힘을 바탕으로 그 위대한 국가적 연대를 성취해왔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미래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삼국사기 국가형성기는 그러한 힘의 결집상을 적지 않게 보여주고 있다.

가족의 미래사에 대한 전망도 대개는 동의하지 못할 것이다. 서구 역사를 전범으로 믿고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의 불편하기 그지없는 '장유유서' 정신이 아름다운 것일 수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는 역사적 지성의 소유자로서 가족의 미래에 대한 전망에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친친급인(親親及人)이 가족 이기주의를 위한 것이 아니고 가족의 힘과 가치체계를 지키려는 틀이었음을 생각하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가부장제가 해악의 근원이 아닐 수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는 오히려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지성의 소유자일 것이다. 아직은 가부장제가 필요한 역사단계이며 가부장제는 어느 가족원을 억압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전통을 지키는 것은 가장 초보적인 역사주의이다. 그 위에 가족을 초월하는 가치를 세워 나아가는 일은 역사의 영원한 이상이다.

우리는 한 범죄자 때문에 인간을 매도할 수 없듯이 지성적 역사적 가부장의 가치를 일방으로 훼손하는 것은 역사적 몰각이랄 수 있다. 만일에 지금의 성씨제도의 깃발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는 "역사적 사상적 문화적" 증거가 있는가? 묻고싶다. 지금 많은 논객들의 설익은 야사적(野史的) 논리가 아닌 정중한 문화사로서 검토해보기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청산적 역사, 사명감의 역사, 개인적 인격의 역사로서가 아닌 전문적 시대사적 감각을 조금이라도 경험하지 않았거든 이런 중요한 논의에서는 스스로 빠지는 것이 옳은 일이다. 공자가 "잘 모르거든 빠져 있으라"고 한 이유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 과학적 기술적 학문적 일대 환상에 빠져있다. 서구적 환상의 총체적인 모습이다. 우리 진정한 가치와 진리는 그것만으로는 영위되기 어렵다.

예컨데 최근 윌리엄 해너스는 'The Writing on the Wall: How Asian Orthography Curbs Creative"(최근 일간지 보도)라는 글에서 (1)아시아의 과학의 부진은 (2)한자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한자는 일음 일자 일의를 가지고 있어서 (1)추상적 (2)분석적 사고가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양의 학자들이 완전히 합리적인 것은 아니며 상당한 정도 '자아도취'에 빠지는 오류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여러 깊이 있는 글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 제기된 한자론은 완전한 상상에 불과한 것인데 놀랍게도 국내의 동양학자 중진들이 다수 동의하고 있다.

그들은 한자가 얼마나 경험적이고 분석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반증할 뿐이다. 동아시아의 경험처리법을 사실 위대한 것이었다. 천지인 삼재사상이 그것이다.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쉽게 손상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 사회에서 시급히 해결할 일은 오히려 문화의 왜곡, 전통의 단절, 가치관의 혼돈, 가족의식 가문의식의 괴멸 같은 문제일 것이다. "남성보다 여성이...", "여성보다 남성이..." 하는 성적 이기주의를 털어낸 후에야 비로소 그런 중대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정당성을 얻게 될 것이다. 불란서의 유력지가 한국의 전통가치 단절모습을 분석하고 '너무 빨리 젊어진다"고 비아냥거렸다고 한다. 문화성과 역사성이 고려되지 않은 겁없는 "바꿔" "빨리" 때문일 것이다.

오리려 비록 불편하더라도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바꿀" 일인지 판단해야 한다. "지금 필요하면 모두 바꾼다?" 얼마나 무모하고 비역사적 비문화적인 발상인가? 더구나 그런 일을 "운동하듯이 밀어부친다"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일이며 나라의 힘을 낭비하게 될 것인가.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낭비하고 국민화합을 크게 훼손하게 될 것이다.

과거의 정치가 지역감정 대립으로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넣었었다면 미래에는 성간 대립을 조장하여 이 대립의 역동을 새로운 정치 구조로 밀고 가려는 것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거의 민족에 대한 죄악의 수준일 것이다. 모두 스스로를 돌아보고 진정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자문해야하고 만일 여성단체나 남성단체가 그런 일을 위한 단체라면 해체의 길을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또 나아가 성간 화합과 가정의 가치를 보존해야 할 여성부가 또한 혹여 국민화합을 깨는 일에 주로 나서고 제2의 대립구조를 조장하는 기능을 앞장서서 강화한다면 폐지하는 것이 나라에 보탬이 될 것이다. 또 어떤 공직자가 그같이 균형을 잃는다면 사임하는 것이 국가에 좋을 것이다. 더구나 그러나 그런 중대한 일에 정부가 분별없이 끼어든다는 것은 분명 공정을 잃은 일일 것이다.

주체적 사상성과 문화가 있는 사려 깊은 지도력을 보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겸허한 자세로 특별한 예단이나 인위성 없이 국민의 의사가 물흐르듯이 바로 가도록 하는 것이 공인들이 할 일일 것이다. 이제 국민들이 모든 상황을 잘 감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비록 낡아 보이지만 여성은 남성보다는 덜 급진적인 것이 여성의 진정한 가치이며 본분일 것이며 파괴적인 현장에 뛰어들기보다는 생성과 화해의 힘이라고 하는 여성의 고유한 권능과 장기에 보다 치중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나는 모든 여성들이 세대를 뛰어넘어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과 여성성을 견지하는 일이 우선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남성화" 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역으로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나이에 따라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 점점 약화되는 문제가 있으므로 이는 의지와 심성으로 그리고 문화로 극복해야할 일이다.

그런 정상적 심성의 회복과 수립을 위한 대책을 논의하는 일이 먼저 이루어지면서 제도의 문제가 논의되는 것이 순서이다. 법에 의해 피해를 보는 불합리가 있다면 그런 시급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국민의 의사가 결집된다면 못할 일은 없다. 어떤 중대한 결단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그 결집의 과정이 공정하고 정상적이어야 하며 인위적 혹은 물리적 힘이 가해지는 불공정 상황에서는 곤란할 것이다.

여러 혁신운동 단체나 인사들이 사회의 개선과 발전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단체의 원래 의의를 넘어서서 단체 자체의 논리에 의해 역으로 과도한 주장이 나올 수 있다. 이 점을 경계하지 못한다면 재앙이 될 수 있다. 특히 단체의 존립을 위하여 혹은 그 지도자들의 능력과 성과를 과시하기 위하여 운동이 격화되거나 극히 인위적인 본질을 가미하게 된다면 이것은 중대한 비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 또한 유념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은 환경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믿을 수 있으므로 우리는 아직도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은 모두 극복될 것으로 믿는다. 서두르거나 피해의식에 서로 사로잡히는 것은 분명 정상이 아니다. 또 서구의 수치 기준에 따라 우리가 우리들의 행동지표를 정하는 일도 그 자체가 부끄러운 일임을 깨우치게 될 것이다. 나의 전통 나의 사상 나의 문화 나의 역사적 가치를 아직 잘 모르거든 '지나친 액션'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역사와 전통이란 대개 타파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얼마나 전근대적인 낡은 사념인지를 모르거든 왜 서구인이 동아시아인을 진정 비웃는지를 모르거든 좀 더 조용히 자기 사상과 역사와 문화를 공부한다면 스스로 높은 자신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유덕조 기자는 유교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3/05/09 오전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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