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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남성도 하나 둘 … "부모姓 함께 써요"

 
  

 
[기사문] 남성도 하나 둘 … "부모姓 함께 써요"
발행일 : 2003-07-13 등록일 : 2003-07-29
[중앙일보] 2003년 07월 13일 (일) 21:09

'오한숙희(여성학자)' '조한혜정(연세대 교수)' 등 두글자의 성을 사용하는 이름을 언론매체 등에서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지난 1997년 여성계 인사들이 중심이 된 '부모 성(姓) 함께 쓰기 운동'의 결과다. 당시 선언에 참여한 1백70명은 이 운동을 호주제 폐지를 위한 상징적인 문화운동으로 제안했다.

이들이 목표로 내세웠던 '호주제 폐지'는 현재 정부에서 기획단을 구성,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조만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부모 성(姓) 함께 쓰기 운동'은 또다른 양상으로 번져가고 있다. 성을 쓰지 않거나 아예 이름조차 부정해 버리는 '급진적'인 움직임도 등장했다.


◇ "엄마 피도 딱 절반"=초대 여성부장관을 지낸 한명숙 환경부장관은 1985년 낳은 아들 이름을 '박한길'로 정했다. 남편 성인 '박' 다음에 자신의 성인 '한'을 집어넣은 것. 부모성 함께 쓰기의 원조인 셈이다.


본격적인 운동은 '공자를 울린 여자'의 저자 신정모라(41)씨에 의해 시작됐다. 그는 95년 PC통신공간에서 '엄마 성 함께 쓰기'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신정모라씨는 2001년 법원에 개명신청을 해 호적상 이름도 바꿨다.


대부분 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필명이나 예명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해 훨씬 적극적이다. 그는 "성(姓)이 상징하는 가부장제 의식을 해체하고 딸을 낳아도 생물학적으로 대가 끊기지 않는다는 자연스런 이치를 설명하려 했다"고 말했다.


운동이 본격화 된 것은 지난 97년 3월 세계여성의 날 기념 여성대회에서 '부모성 함께 쓰기 선언'이 발표되면서 부터. 이후 지하은희(여성부장관) 이오경숙(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고은광순(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운영위원) 씨 등 여성계 인사들이 적극적으로 사용하며 널리 알리는데 애썼다.


선언 이후 PC통신 등을 통한 사회적인 논쟁이 불거졌다."피박.방구.천민 등 이상한 성이 만들어지면 어떻게 하나""엄마 죽고 새엄마 들어오면 새엄마 성을 쓰나"등 운동을 희화화시키는 지적에서부터 "고유문화 파괴행위"라는 반발도 만만찮았다.


운동이 6년째 접어들면서 여성계를 비롯 대학생.네티즌을 중심으로 운동은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대학가나 시민단체에서는 일부 남성들도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고은광순씨는 "요즘엔 네자 이름이 적힌 명함을 주면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 차원이라는 것을 알아볼 정도가 됐다"며 운동이 일반인에게도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성이 두자인 부모의 자녀는 성이 넉자가 된다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신정모라씨는 "아버지 성에서는 앞부분을,어머니 성에서는 뒷부분을 따오면 아들은 부계성을, 딸은 모계성을 계승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오경숙대표는 "호주제가 폐지되면 더이상 부모성 함께 쓰기 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성도 이름도 다 싫다"=개혁국민정당의 '호주제폐지특별위원회'박종주(59) 공동위원장은 2000년부터 성을 떼어버리고 '종주'라는 이름만 사용한다. 양성평등을 위한 '양계혈통(root.re.kr)'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종주'씨는 "어머니 성도 따져보면 외할아버지 성이기 때문에 결국 부계성이긴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왜 성을 쓰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불평등한 가부장제의 모순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 좋다고.


지난 2월 이라크에서 '인간방패'활동을 벌인 박은국(23.경희대 한의대 본과2년)씨도 대외활동에서 일절 성을 쓰지 않는다. '은국'씨 역시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부장적 제도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성을 쓰지 않고 있다.


이와함께 실명 대신 가명을 사용하는 사례도 젊은 여성주의자 사이에서 생겨나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지어진 이름을 거부하고, 본인이 직접 지은 새 이름을 통해 정체성을 찾겠다는 취지다.


여성해방연대 '소란(28.여)'운영위원장은 자신의 본명을 밝히기를 꺼려했다. 대신 "남자는 강한 느낌,여자는 순한 느낌의 이름을 부여받는 것이 싫다"고 말했다. '시끄럽고 번잡스럽다'는 의미의 자신의 별칭처럼 적극적으로 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최정아 사회복지부장은 "아버지 성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데 대한 반발로 생긴 이런 움직임이 늘어날수록 '호주제 폐지'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