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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호주제 폐지가 민족사에 대한 도전? 민법 개정안, 과연 국회 법사위 넘을까

 
  

 
[기사문] 호주제 폐지가 민족사에 대한 도전? 민법 개정안, 과연 국회 법사위 넘을까
발행일 : 2003-06-18 등록일 : 2003-06-18
오마이뉴스, 법사위 의원 13명 상대 긴급 의견조사

김지은/박형숙 기자    


▲ 지난 2002년 열린 한국여성대회에 참가한 여성들이 '호주제 폐지' 구호가 담긴 상징물을 들고 있다. 호주제 폐지는 이미 여성계의 오래된 숙원이다.  ⓒ <여성신문> 민원기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호주제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알 수 있지만 아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니 남자의 성을 따르도록 해서 가계의 질서를 잡는 것이다. 이혼한 여성들이 (호주제 폐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다."

최병국(울산 남) 한나라당 의원의 '호주제 폐지'에 대한 성토다.

최 의원은 '호주제 폐지'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호주제는 전통이고 역사의 침전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남자의 성을 따르기 싫은 여성들은 일가(一家) 창립을 하면 되지 않느냐"며 "(호주제 폐지를 논하는 것이) 대단히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질문에는 "질문(호주제 폐지) 자체가 틀렸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며 회피했다. 하지만 앞선 발언으로 볼 때 그는 "사실상 (호주제 폐지에) 반대"의사를 표명한 셈이다.

15명 중 "호주제 폐지 찬성" 의원 단 5명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이 지난 달 27일 국회에 제출됐다. 유사이래 최초다. 이미경(민주당) 의원·서상섭(한나라당)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52명의 공동 발의다.

같은 날 호주제 폐지를 주장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272명의 국회의원을 상대로 일대일 로비를 펼친다며 '호주제 폐지 272'를 발족시켰다.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기를 바라는 복안이다.

하지만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기 위한 첫 관문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다. 호주제 폐지안이 입법 발의된 이상 법사위 소속 의원들이 이를 심의해 본회의 상정 여부를 결정한다. 호주제 폐지안의 생명줄을 법사위원들이 쥐고 있는 셈이다.

<오마이뉴스>는 국회 법사위를 하루 앞둔 17일, 법사위 소속 의원 15명을 대상으로 '호주제 폐지'에 대한 의견조사를 했다. 방법은 전화 및 서면을 이용했다.

'호주제 폐지'에 대한 법사위 소속 의원들 의견 조사
☞공통질문: 지난 달 발의된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에 찬성하십니까?



이 결과 호주제 폐지안에 찬성하는 의원은 단 4명뿐. 민주당에서는 사무총장인 이상수(서울 중랑 갑) 의원을 비롯해 이번 민법개정안의 공동발의자인 천정배(경기 안산을)·조배숙(비례) 의원 등이다. 한나라당은 원희룡(서울 양천 갑) 의원만이 찬성에 손을 들었다. 원 의원은 "남성인 호주를 중심으로 한 호주 승계순위 및 부계성 강제 조항 등의 삭제에 찬성한다"며 호주제 폐지의 '소신'을 밝혔다.

최용규(인천 부평 을) 민주당 의원은 "상임위를 통해서 발언하겠다"며 '답변유보' 의사를 밝혔으나 모계성 및 양성 승계에 대해 "찬성한다"고 말해 '사실상 찬성'을 표했다. 최 의원까지 '찬성'에 포함시킨다 해도 단 5명. 과반수에 못 미치는 수다.

  ▲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정가련)은 지난 달 23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호주제 폐지 결사 반대"를 주장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반면 나머지 의원 중 대다수는 "의견 표명의 곤란함""법안 심의 때 의견을 말하겠다"는 등을 이유로 '유보'의사를 내비쳤다.

유보 입장을 내세우며 입장 밝히기를 꺼린 의원은 모두 7명. 함석재(충남 천안 을)·김용균(경남 산청·합천)·최연희(강원 동해·삼척)·김기춘(경남 거제)·심규철(충북 보은·옥천·영동) 한나라당 의원, 함승희(서울 노원 갑) 민주당 의원, 김학원(충남 부여) 자민련 의원 등이 그들이다.

이들이 말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김기춘 의원은 "법사위원장으로서 미리 찬·반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며 '입장 유보'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김 의원은 "자녀가 양성(姓) 또는 어머니의 성(母姓)을 쓰도록 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반대의 뜻을 표했다. 이는 이번 호주제 폐지안의 핵심 내용이랄 수 있는 '모계혈통 부정 조항'(민법 제781조) 삭제와 궤를 같이 하는 내용이다.

김 의원은 "지금껏 면면하게 이어오는 성씨제도와 혈통주의도 의미 있는 전통적 유산"이라며 "이는 가급적 유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상 호주제 폐지안의 핵심에 '반대'의 뜻을 품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김 의원은 거듭 "나는 여성의 권익 옹호에 앞장서는 사람"임을 강조했다.

심규철 의원은 "아직 의견을 말 할 수 없다"며 "유보적"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심 의원 역시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불편해도 좀 참으면 안되나, 유림의 시위를 보니 단발령에 저항하던 의지더라"고 말했다. 심 의원은 모계성 승계에 대해서도 '반대'를 표했다. 심 의원은 "성은 하나의 약속"이라며 "이를 깨는 것은 곧 질서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함석재·최연희 의원은 각각 "지역 여론 수렴을 아직 하지 못했다",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라 의견을 밝히기 어렵다"는 이유를 내세워 답변을 회피했다.

함승희 의원은 "이 법안을 직접 심의하게 될 소위원회의 위원장으로서 답변하기 곤란하다"며, 김용균 의원은 "법사위 간사로서 공정성을 위해 답할 수 없다"며 유보의사를 밝혔다.

한편 비교섭단체인 자민련의 김학원 의원은 "당론이 아직 정해지지 않아서 밝힐 수 없다"고 말해 이후에도 '당의 뜻'에 따를 것임을 표명했다.

흥미로운 점은 '유보의사'를 표명한 7명의 의원 중 5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국회 내 다수당으로서 총 15명의 법사위 소속 의원 중에서도 8명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의원은 "한나라당이 절대 다수인데 그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며 "민주당이야 개혁적 의견을 가진 의원이 많으니 사실상 한나라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 "호주제는 가문과 혈통을 지키기 위한 전통의 제도"라는 주장은 정가련으로 대표되는 유림의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사진은 지난달 23일 서울 탑골공원에서 열린 유림의 호주제 폐지 반대 집회.  ⓒ 오마이뉴스 남소연



"호주제 폐지 운운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
최병국 의원의 '호주제 수호' 논리


  
▲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  ⓒ 오마이뉴스 이종호
의원들의 발언 중 눈여겨볼 내용은 최병국 한나라당 의원이다. 최 의원은 '호주제 폐지를 골자로 한 민법개정안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질문 자체가 틀렸다"며 불쾌감을 표했다.

이어 그는 "그러니 답할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가문과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한 제도가 바로 호주제"라며 "아이가 태어나면 어머니는 알 수 있지만 아버지는 알 수 없지 않느냐"며 '부계혈통주의'를 강조했다.

또한 최 의원은 "남자의 성을 따르기 싫은 여성은 일가창립을 하면 되지 않느냐"며 "호주제는 전통이고 역사의 침전물이므로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민족사에 대한 도전"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는 사실상 호주제에 대해 '유림'을 중심으로 한 정통가족제도수호범국민연합에서 내세우고 있는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최초로 의원 입법 발의된 민법개정안이 이번 임시국회 내에 처리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터뷰에 응한 법사위 소속 15명의 의원 중 과반수에 해당하는 8명의 의원이 '입장유보'이거나 '사실상 반대'인 셈이다.

호주제 폐지법안, 법사위 통과 가능성 쉽지 않아

"부모성 같이 쓴 지 1년 됐다"
이상수 의원 아들의 성은 '이안'
"안녕하세요. 이안○○입니다."

현역 의원의 아들도 '부모성'을 같이 쓴다. 이상수(서울 중랑 갑) 민주당 의원의 아들(19)이 그렇다.

그는 자신을 아버지인 이상수 의원의 성과 어머니 안승씨의 성을 따서 '이안○○'이라고 소개했다. 현역 국회의원의 자녀가 부모성을 같이 쓰기는 무척 드문 경우. 호주제 폐지법안을 심의하게 될 법사위 소속 의원의 자녀 중에는 유일하다.

그가 부모성을 같이 쓰게된 계기는 지난 해 여름 고은광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 운영위원의 특강을 듣고 부터다. 부계혈통주의가 갖는 문제점에 대해 공감하게 됐기 때문이다.

"당시 강의를 듣고 나서 바로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의 성을 같이 쓰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어머니는 아주 좋아하시더라구요. 아버지는 약간 떨떠름한 표정이시긴 했지만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안씨는 그 후로 2년째 부모성을 같이 쓰고 있다. 현재 대학 2년 생인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나 글을 쓸 때도 부모성을 같이 밝힌다.

그는 "실생활에서 그렇게 소개하면 사람들이 신기해하면서 되묻는데 그런 때 호주제의 부당함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며 "부모성 같이 쓰기는 실생활에서 사람들에게 직접 인식시킬 수 있는 상징성을 가진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아버지께서도 호주제 폐지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계실 것"이라며 "앞으로도 아버지를 적극 설득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 김지은 기자

이같은 결과에 대해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사무총장은 "여론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정작 국민의 뜻을 잘못 읽고 있다"고 비판했다.
  남윤 총장은 "더구나 '호주제가 가문과 혈통을 지키기 위한 제도'라는 의견은 남계혈통주의에 입각한 과거의 굳은 논리"라며 "아이가 부모
  공동의 노력과 유전자로 출산되는 것은 상식"이라고 일축했다. 이어 남윤 총장은 "조선시대 중반까지도 호주제가 없었고 고려시대에도 부부관계가
  더 평등했다"며 "현재의 호주제는 중국의 종법제와 일본의 호주제가 결합된, 우리의 전통과는 상관없는 제도"라고 말했다. 의원들의 집단적인
  '입장 유보'에 대해서도 강한 비난이 일었다. 고은광순 '호주제폐지를위한시민의모임' 운영위원은 "자기의견을 분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 번 총선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국회의원으로서 일을 하기 위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다음 번 당선 위해서 지키고
  있는 꼴이므로 목적이 전도된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난 달 27일 호주제 폐지안이 국회에 제출된 후 여성계는 "오랜 숙원을 이룰 신호탄이
  터졌다"며 감격해 했다. 그러나 이 신호탄은 자칫 '메아리 없는 울림'으로 그칠 위기에 처해 있다.


 


▲ 2003년 4월 22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를 위한 간담회에서 곽배희 가정법률 상담소장이 호주제 폐지 법률안의 취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2003/06/18 오전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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