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 <평화 캠페인>禁忌 벗어나 생각이 바뀌고 있다 | ||
발행일 : 2003-06-20 | 등록일 : 2003-06-26 | |
[문화일보] 2003-06-20 () 08면 2440자 최근 우리 사회는 금기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다. ‘남자가 여자가 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는 것’, ‘자식은 당연히 아버지 성을 따라야지’, ‘유부녀가 바람피웠으면 쇠고랑차도 할 말 없다’는 등 당연시돼온 상식들이 이제 더이상 상식의 영역에 안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현상은 무의식적으로 일상에 체화된 군사문화, 가부장문화 등 오랜 억압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재발견 시도에서부터, 억압에 의해 내면화된 자기검열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려는 몸짓은 물론 조직적 저항운동의 성격까지 띠고 있는 이런 흐름이 자신과 이웃의 존엄성에 기초한 새로운 공동체의 구축 운동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자기 정체성의 재발견〓개그우먼 김미화(39)씨는 지난 15일 숨겨왔던 가족사를 공개했다. 이중결혼한 생부의 성을 따라 원래는 박씨였으나 모친의 성으로 바꿨다는 것이었다. 김씨는 호주제 폐지운동 홍보대사로 활약중이다. 데뷔 때부터 혼혈소문에 시달렸던 탤런트 이유진(26)씨도 지난달 28일 회견에서 “아버지는 스페인계 미국인이었다”는 충격고백을 했다. 22세의 탤런트 김승현씨도 자신이 자식을 가진 아버지임을 고백했다 . 혈통의 순수성을 높이 평가하고 혼전출산을 금기시하는 유교적 풍토에서 이들의 고백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혼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두려워 거짓말을 해왔다”는 이씨의 눈물에는 자신에 대한 재발견, 내면에 억압된 사회의식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었다. 이런 점에서 팬들뿐 아니라 여성계에서도 격려와 지지를 보냈다. 3년전 동성애자임을 고백, 파장을 던졌던 탤런트 홍석천(31)씨의 마찬가지였다. 최근 홍씨는 방송섭외가 번번이 취소되면서 나이트클럽 등을 전전하고 있으나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한다”고 밝혔다. 인간성 회복에 대한 만족이다. 홍씨는 이라크전 파병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연예인 하리수(27)씨는 지난해 12월 법원으로부터 여성으로의 호적변경허가를 받은 뒤 “트랜스젠더에게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안한 삶을 누릴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인천지법원장 황인행 판사는 “실제 여성으로 살고 있는 하씨의 인간적 존엄성과 가치, 행복추구권 등을 고려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조직적인 반란〓성적 표현의 자유 보장, 간통죄 폐지 요구, 동성애자 권리찾기 운동, 성폭력과의 전쟁, 양심적 병역거부 등 사회제도의 개선을 위한 집단적인 저항의 형태도 확산되고 있다. 일부 유럽국가에 이어 캐나다가 15일 동성애자의 결혼을 합법화한 가운데 우리 사회에서도 동성애자들의 차별반대 운동이 한창이다. ‘동성애자 인권연대’ 대표 임태훈씨는 자신들의 활동이 인권운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강조한다. 간통죄 폐지 운동은 성(性)의 자기결정성에 따라 국가나 사회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며 개인의 행복추구권이나 인권이 그 무엇으로도 침해될 수 없다는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인 이들의 주장에 공감대가 확산되는 추세다. 외설이냐, 예술이냐의 논란을 촉발했던 법적 소송에 법원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종묘공원에서 여성해방을 모토로 여성의 성기, 자궁 모형의 쿠션 등이 전시된 설치행사장을 훼손한 유림에 대해 법원은 5일 손해배상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음란성에 대해서도 “전체적인 표현이나 내용이 음란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회적 논란이 컸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서는 재판부가 “아직까지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이유로 실형을 선고했다. ◈이유있는 반항〓귓불, 아랫입술을 뚫어 고리를 다는 피어싱과 컬러풀한 머리염색에 이어 최근에는 문신이 유행이다. 축구선수 안정환씨가 골 셀리브레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팔 문신이 기폭제가 됐다. 개성과 자유를 중시하는 P세대의 의식이 반영된 현상이다. 그래도 아직 학교의 제재를 받는 중·고등학생들은 불만이 많다. 2000년 두발자유화 시위를 계기로 결성된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 중·고등학생연합’은 “학생도 인격체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권은 찾아 뭐하느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라는 일부 부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교직사회에서도 동조기류가 늘고 있다. 경기 의정부여고 심우근(45) 교사는 지난해 12월 복장검사 등 학생생활지도 규정이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국가인권위에 시정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냈다. 머리길이, 핀색깔, 신발뒤축, 양말색상까지 제한하는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누드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이제 누드는 직업모델의 전유물로 여겨지지 않는다. 현역 미술교사로 교육차원에서 자신과 부인의 알몸사진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려 음란물 적시 등의 혐의로 기소된 충남 O중 김인규(40)씨는 지난해 12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기가 드러나긴 했으나 홈페이지 전체의 맥락에서 봤을 때 음란한 의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씨는 “표현의 문제에 대해 경직된 관행이 고쳐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상협기자 jupiter@munhwa.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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