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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평등부부를 찾아서]<12>오성근-이정희씨

 
  

 
[기사문] [평등부부를 찾아서]<12>오성근-이정희씨
발행일 : 2003-07-14 등록일 : 2003-07-15
[세계일보] 2003-07-14 () 38면 1878자    
  
    
"오성근입니다. 하우스허즈번드(남편전업주부)입니다."
5년째 전업주부인 오성근씨는 명함을 건내며 ''하우스허즈번드''라고 강조한다. 직업이 전업주부인데도 직업이 없다고 무시하길래 명함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아내는 밖에서 일하고 남편은 안에서 일하는 오성근(38)-이정희(33.경기도 과천)씨 부부. 남편 오씨가 결혼할 때부터 전업주부였던 것은 아니다. 오씨는 한의원컨설팅을 해주며 돈도 짭잘하게 벌었고 재미도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5년전 딸 다향이(5)가 태어나면서 활동무대를 집안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오씨는 평소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했는데 송파구청에서 일하는 부인 이씨가 "일을 더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오씨가 전업주부로 나서게 된 것.
오씨의 하루는 아침 6시에 시작된다. 아침밥을 하고 아내를 깨워 밥을 먹인 후 출근시킨다.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책을 읽어주고 같이 놀아주는 일 등 육아는 그의 차지다. 청소와 빨래도 물론 그가 한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집안일을 하고 아이와 함께 하느라 신문 볼 시간도 없다. 집안일을 대충 마무리하고 아이가 잠에 드는 11시쯤이 그가 비로소 가사노동에서 해방되는 시간이다.
오씨는 다섯살 어린 아내를 부를 때 ''정희씨''라며 꼬박꼬박 존대말을 썼다. 존대말을 쓰는 이유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존중해주기 위해서다. 또 자신의 성질이 급해 말을 놓게 되면 부부싸움을 하게 될까 걱정돼서 이기도 하다. 아이들 보기에도 존대말이 좋단다.
그는 "요즘 아내와 아이가 둘째를 원해서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벽에는 "동생 하나 낳아줘. 엄마 밥 많이 먹어서 배 뚱뚱해지면 애기 낳아줘"라는 낙서가 씌여 있다. 아이가 말한 것을 아내가 받아 적고 자신에게 시위를 하는 것. 애 하나 기르기도 힘든데 둘째를 낳게 되면 글을 쓰겠다는 꿈이 또 미뤄질까봐 걱정이다.
자신이 한 선택에 후회는 없을까. 그는 "오히려 더 잘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어렸을 적부터 꿈꿔왔던 동화작가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 다만 다향이를 키우느라 글을 쓸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아직은 습작과 메모를 하는 정도.
양성평등에 관한 신념이 결혼 전부터 있었을까. 오씨는 "부인 이씨가 여성의 발언이 인정되지 않는 가정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말수가 적었다"면서 "부인의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고 말한다. 오씨의 제안으로 부부은 여성학을 공부했고, 결혼 전에 가사노동, 육아, 태교에 관해 합의했다.
아침밥을 오씨가 짓기 시작한 것은 결혼을 하면서부터다. 새벽잠이 많은 아내에게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침밥을 짓게 하는 것은 횡포라고 생각했다.
부부 싸움은 하는 지 궁금했다. 자주 한단다. 결혼하고 나서 부부가 처음으로 싸운 것은 아침밥 때문이었다. 전날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나서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밥을 지어줬더니 부인 이씨가 입맛이 없다는 이유로 그냥 퇴근해 버리더란다. 요즘 싸우게 되는 이유는 주로 다향이 때문이다. 오씨는 아내가 아이를 대하는 데 친밀도가 떨어지고 아이가 뭘 원하는 지에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게 불만이다.
집안일을 하는 아들과 사위에 부모님들의 불만이 없을 리 없다. 장인장모는 속도 모르고 ''딸 고생시킨다''며 불만이고, 부모는 ''아들이 못나서 그렇다''며 싫어하신다. 살림만 하기 불편한 점은 없냐고 묻자 "남성이라는 이유로 내가 TV나 방송에 나간다고 가끔 주변의 여성 주부들이 시샘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는 다향이에게 늘 손수 콩을 갈아 두유를 만들어 줄 정도로 프로 주부"라며 자신이 더 열심히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씨는 "주부는 전문직종인데 임금을 받지 못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한다"며 "성별에 따라 잘 할 수 있는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이보연기자 byabl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