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문] 건강한 가정은 ‘가부장 가정’이 아니다 | ||
발행일 : 2003-11-12 | 등록일 : 2003-11-17 | |
[한겨레] 몸이 아프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가 실감하면서도, 건강할 때 몸을 돌보지 않다가 어딘가 아프면 그제야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정도 그러하다는 생각을 한다. 몸이 성할 때 혹사하듯, 가정 역시 혹사당해 온 증거, 그로부터 파생된 과부하에 대한 거부의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그런 사례가 이혼율 증가, 그리고 출산율 감소와 같은 현상이다. 혹자는 그것을 문제라 하지만 나는 문제라기보다 변화의 증거로, 사회현상의 하나로 본다. 양성평등이 사회적 가치로 자리잡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부부관계, 가족관계는 갈등과 결혼 중단의 원인이 될 소지가 예전보다 많아졌다. 사실 경제적 이유로 인한 이혼이 많은 것은 확실하나, 또 한편으로 가부장적 가족제도 속에서 더는 굴욕과 억압을 참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당당한 선언도 그 이유가 됨을 무시할 수 없다. 공교육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래도 좋은 대학 가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는 서민의 삶은 고달프다. 그리고 그 고달픔은 고스란히 개별 가정의 몫이다. 절반에 가까운 여성들이 취업하는 상황에서, ‘직장-가정’의 양립 부담을 생각할 때 자녀를 ‘되는대로’ 많이 낳겠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 것인가. 보육시설, 노인부양 시설 등은 양적, 질적으로 너무나 부족하다. 사교육비, 주택마련자금, 노후자금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가정 역시 드물다. 이러니 가정의 부담을 사회가 분담하는 제도가 갖춰지지 않는 한, 이혼율 증가, 출산율 감소를 막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사람들은 결혼과 가정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원정 출산, 이민 열풍이 보여주듯 이 땅의 보금자리를 거부하기도 한다. 이 사회가 나와 우리 가족을 위해 해 준 것도 또 해 줄 것도 없다는 희망 없음의 표출이다. 이 사회의 방치 아래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해내야 하는 사이, 가정은 병을 앓아 왔으며, 이제 그 징후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이러다 보니 건강가정, 가정의 건강성이 요즘 들어 자주 거론된다. 관련 법안이 마련되고, 시민들이 모여 활동하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그런데 어디선가 건강가정을 “남성 가계 부양자를 기초로 노부모를 봉양하는 전근대적·가부장적 가정형태”로 이해하여 비난하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는 큰 문제다. 자녀에게 엄마성을 줄 수도 있게 호주제 관련 조항들이 바뀌고, 입사 지원서에 성별을 기재하지 않는 채용방식이 확산되는 시점에서, 이는 우리 삶을 몇십, 몇백 년 전으로 되돌리자는 시도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관련 자료와 연구 결과, 다양한 현장을 통해 제공되는 활동과 사업 등을 살펴보면 이런 인식은 오해이며 편견임을 알 수 있다. 그 사례로 국회 공청회에서 논의된 ‘건강가정 육성기본법’을 보면, 양성평등·민주성·직장-가정의 조화 같은 가치를 지향하며, 가족원 공동의 욕구 충족, 구성원 상호간의 애정과 신뢰와 존중 등이 강조되는 건강가정의 내용을 알 수 있다. 건강한 가정은 남녀노소를 차별하지 않는 구성원 개인, 그들이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감의 의미,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인식 등 개인·가정·사회의 세 꼭지점의 균형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더불어 사는 철학이 필요한 현 시대의 요구를 담보하는 개념이다. 건강한 가정은 어떤 특정한 가족형태를 규정하지 않는다. 어떤 가정이든 나름의 생활과정에서 건강성을 증진시킬 수 있는 기회, 자율적으로 건강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중시한다. 그런데 건강가정을 남성 가계 부양자 모델로 비판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발상이다. 나는 가정의 건강성을 가부장적 가족의 내용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두렵다. 그들로 인해 가정의 건강성이 구시대적 발상으로 치부되어 비난 받을까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이미 관련법은 입법예고가 돼 있고, 단체는 활동을 하고 있으며, 연구자의 연구 결과도 대중에게 확산되고 있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남성 부양자 모델 운운하며 건강가정을 구시대적 형태의 가족으로 폄하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때문에 어쩌면 가부장적 가족을 내심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헛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욱 두려운 것은, 진보라는 이름의 변화가 합의 끌어내기와 사회적 연대 맺기에 실패할 때, 그 누군가를 보수라고 낙인찍으며 희생자를 찾게 되는 역사의 과오가 다시 생각나기 때문이다. 함께 가도 부족한 이 시점에, 더구나 알고 보면 가는 길, 가고자 하는 길이 그리 다르지 않은데도. 송혜림/울산대 교수·가정을 건강하게 하는 시민의 모임 이사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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