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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집중연구]혈통호적 가고 개인호적 온다

여성연합 2010. 12. 28. 14:54
 
  

 
[기사문] [집중연구]혈통호적 가고 개인호적 온다
발행일 : 2003-04-24 등록일 : 2003-05-15
[뉴스메이커]

"나, 우리 엄마가 왜 재혼 안 하는지 몰랐거든? 왜 몇 년간 결혼식 않고 다른 남자랑 동거만 하는지 몰랐어. 왜 결혼도 안 하고 남자들 떠나보내고 혼자 우는지 몰랐어. 그런데 호주제 때문이더라고. 이혼 가정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게 무서운 엄마가 재혼해서 자식이 성씨 다른 것 때문에 고통받는 걸 견딜 수 있을 리 없잖아."

호주제폐지를 위한 시민의 모임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이혼 가정의 자녀 박모양(16)의 하소연이다. 박양 가족의 딱한 사정은 호주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 중 하나다. 민법 제4편에 따르면 여성은 남성 호주의 가(家)에 입적해야만 가족이 된다(제779조). 자녀가 태어나면 그는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父家)에 입적한다(제781조). 그리고 한 번 부여받은 성씨는 고아가 된 후 입양되는 경우를 제외하곤 죽을 때까지 바뀌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박양과 같은 입장에 있는 수많은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가족부는 이혼-재혼 사실 드러나"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박양의 소원이 풀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에는 서울지법 북부지원 곽동효 지원장이 어머니의 재혼으로 인해 아버지와 성이 다른 곽모군(14)의 위헌제청신청을 받아들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또한 호주제의 주무부서인 법무부 강금실 장관과 여성부 지은희 장관도 호주제 폐지를 공언한 상태다.

국가인권위원회도 3월 중순 "현행 호주제 관련 규정은 위헌이며 호주제는 인권침해제도"라는 의견을 헌법재판소에 냈다. 인권위는 호주제가 가진 문제점을 지적했다. 당시 인권위는 "△개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로 여성을 남성에 종속시키고 △가족간에 서열을 매겨 평등한 가족관계 형성을 침해하며 △이혼 때 자녀가 모(母)의 호적으로 전적 신고를 하지 못해 가족 형성의 자유를 침해하고 △부계우선주의와 남계혈통 계승으로 인해 여성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에 발맞춰 이미경 의원(민주당)은 이르면 5월 중 호주제 폐지와 관련, '민법중개정법률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이 법률안은 호주에 관한 규정을 삭제하고 자녀의 성 선택을 허가하도록 하는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호주제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가 2001년 11월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6.6%(64명)가 '호주제가 전근대적인 남존여비사상을 조장하고 양성평등한 결혼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고 대답했다. 이제 호주제 폐지는 대세인 셈이다.

호주제가 폐지된다면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호적제도는 어떻게 될까. 호적이란 민법상 호주제의 규정에 따라 국민 개개인의 모든 신분 변동 사항을 시간별로 기록한 공문서다. 호주 아래 가족들이 순서대로 기재돼 있다. 호주제가 폐지돼 호주 개념이 사라진다면 새로운 '신분등록제도'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이 '가족부제도'와 '1인1적제'다.

가족부는 '결혼관계 성립'이 기준이 된다. 한 남성과 여성이 만나 결혼하면 양가 부모의 가족부로부터 나와 새로운 가족부를 만든다. 예를 들어 박일남이라는 남성이 이일순이라는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 둘 중 한 명이 가족 대표가 돼 가족부를 만든다. 가족 대표는 서류상으로만 의미 있을 뿐 실질적으로 별다른 권한을 가지지는 않는다. 자녀 박일자군은 결혼 전까지는 이 가족부에 등재되다가 결혼하면 새로운 가족부를 만들어나간다. 만약 부모가 이혼하면 각각 새로운 가족부를 만든다. 이씨가 박군의 친권을 가졌다면 박군은 이씨의 가족부에 등재된다. 박씨와 이씨가 각각 재혼하는 경우 각각 새로운 가족부가 만들어진다.

가족부 제도는 현재의 호적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인 남녀 불평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혼 시 자녀가 모의 호적으로 이적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도 해결할 수 있다. 또한 가족관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고 최소의 가족 공동생활체가 한 장의 가족부에 담겨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전통과 일맥상통하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가족부는 한 번 결혼한 후 평생을 해로하는 부부 중심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부모의 이혼-재혼-사망 등으로 인해 일반적인 가족부를 구성하지 못하는 경우, 비정상적인 가족으로 비칠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출생 이후의 신분 변동 사항을 알기 위해서는 개인의 가족부를 전부 살펴봐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족부의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1인1적제다. 1인1적제는 모든 것이 개인 중심이다. 국민 개개인은 모두 태어난 직후 하나의 신분등록부를 가진다. 각각의 신분등록부에는 개인의 출생 이후, 모든 신분 변동 사안이 기재된다. 예를 들어 박일남씨와 이일순씨가 결혼하면 각각의 신분등록부에 결혼 사실이 기재된다. 자녀 박일자군이 태어나면 박군의 이름은 박씨와 이씨의 신분등록부에 모두 올라간다. 이혼을 하는 경우, 이혼 사실이 기재될 뿐 다른 변화는 없다. 박씨가 장이순씨와 재혼, 박이자양을 낳는다면 박양은 박씨와 장씨의 신분등록부에 등재된다. 따라서 박일자군과 박이자양은 등록표상으로도 어머니가 각각 이씨와 장씨로 기재된다.

1인1적제는 호주제의 남녀불평등 문제를 해결한다. 가족부제도에서는 필요한 개인의 신분 변동에 따른 이적도 필요없다. 또한 부모의 이혼-재혼 등이 자녀의 호적에 드러나지 않는다. 친아버지-친어머니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기재되기 때문에 자녀의 신분등록부만으로는 부모의 사생활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1인1적제는 아직 국민정서와 안 맞아

단점으로는 신분등록부를 국민의 수만큼 작성해야 하므로 전산시스템 변경에 따른 예산과 인력이 과다 소요된다는 점 등이 있다. 도입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1인1적제가 개인 중심이기 때문에 직계가족을 공동생활 단위로 여기는 국민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1인1적제 도입을 원칙으로 여기고 있던 지은희 여성부 장관이 가족부제도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가족부제도 혹은 1인1적제 도입만으로는 부계혈통주의라는 호주제의 문제점이 해결되지 않는다. 이에 이미경 의원은 자녀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이번 개정안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관련법 개정안이 2001년 7월 국회에 제출된 뒤 아직까지 처리되지 않은 상황을 감안하면 통과 될 수 있을지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가족부제도 혹은 1인1적제 도입은 호주제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일종의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박소현 상담위원은 "새로운 신분등록제 도입은 부계혈통주의의 굳건한 기반을 흔들어놓을 것"이라며 "결국 성은 이름과 마찬가지로 개인을 나타내는 일종의 '부호' 역할이 되고 말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호구부, 일본은 가족부
외국의 호적 실태, 서구선 가족부와 신분증서제도 활용
현재 호주를 법제로 인정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스위스, 대만 등이다.

스위스 민법은 가장(家長)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가장이 성년의 의사능력자여야 한다는 점, 가장권이 승계되지 않는다는 점, 가장의 복수제가 인정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다르다. 신분등록을 위해 개인별등록부(1인1적제)를 사용하고 있으며 이외에 가족등록부를 작성, 직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스위스는 남편의 성을 가족의 공통성으로 하고 있으나 처는 자신의 혼인 전 성을 덧붙일 수 있도록 돼 있다.

대만은 종법제와 같은 호주제는 폐지하고 대신 가장제를 인정하고 있다. 가장은 친족단체에서 추천하며 추천이 없을 경우, 가족 중에서 최연장자가 된다.

우리나라의 호주제는 중국에서 전래한 종법제와 일제 시대의 호주제가 결합돼 성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정작 중국이나 일본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호주제가 없다.

중국의 경우 종법적 봉건제도와 가부장적 가족관을 바탕으로 강력한 지배력을 가진 1인 가장을 중심으로 한 가장제도를 운영했으나 공산주의 이념과 배치된다고 해 와해되기 시작, 현재 호주제는 완전히 폐지됐다.

중국에서는 가구주와 그 가구원의 출생, 사망, 전출-입 등이 기록된 호구부를 관리하는 기관과 혼인-이혼을 관장하는 혼인등기기관이 있다. 부부는 하나의 호구부에 동적하지 않고 자녀는 원칙적으로 어머니의 호구부에 기록된다. 1980년부터 자녀의 성은 부-모 어느 쪽이든 따를 수 있게 됐다.

일본은 1945년 패전 후 호주제를 폐지하고 민법에 있던 '호주와 가족' 조항을 완전 삭제했다. 당연히 호주를 중심으로 한 호적도 폐지했고 새로 부부와 미혼 자녀를 기본으로 하는 가족부를 만들었다. 부부는 혼인 후 협의를 통해 하나의 성을 사용하고, 이 성을 가족부의 편제 기준으로 하고 있다. 자녀도 당연히 이 성을 사용한다.

독일의 경우 출생-혼인-사망부의 3체계였으나 1937년 각 신분등록부간 상호 연결이 안 되는 단점을 해결하기 위해 혼인으로 만들어지는 가족부를 만들어 부부와 미혼 자녀의 신분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자녀의 성은 부모의 성 중에서 부모가 선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부모가 자녀 출생 1개월 이내에 자녀의 성을 결정하지 않을 경우 재판소가 부모 일방에 결정권을 주기도 한다.

프랑스도 역시 출생-혼인-사망부 체계를 기본으로 신분증서제도를 두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출생증서-혼인증서-사망증서 등 다양한 증서를 작성한다. 각각의 증서에 기록된 사항을 한꺼번에 파악하기 위해 출생증서에 다른 증서 내용을 추가로 적는 등 출생증서의 열람으로 개인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1885년에는 가족수첩제, 1953년에는 신분카드를 도입해 출생-혼인-사망증서를 대용토록 하고 있다. 자녀는 아버지의 성을 이어받는데 1985년부터 아버지 성의 앞 또는 뒤에 어머니의 성을 부가하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철저하게 출생-혼인-이혼-사망부만 작성된다. 따라서 개인이 존중되지만 신분등록부간 연결이 힘들고 일관성이 없다. 개개인의 신분 변동을 파악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부부의 성은 우리나라와 같이 별성이 인정되고 있다. 자녀 성의 결정 또한 원칙적으로 자유롭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