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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두 개의 姓 갖고 사는 사람들을 아십니까?

여성연합 2010. 12. 28. 15:19
 
  

 
[기사문] 두 개의 姓 갖고 사는 사람들을 아십니까?
발행일 : 2003-05-23 등록일 : 2003-05-27
[조선일보] 2003-05-23 () 61면 2030자  

한국여성단체연합 황금명륜(黃金明倫·33) 기획국장의 주민등록증에는 ‘김명륜’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다.

현재의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8년.

“내가 태어나게 된 근본인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를 밝히고 싶어” 두 사람의 성(姓)을 함께 쓰기 시작했다. 처음 사용하기 시작한 이름은 아버지의 성을 먼저 쓰고, 어머니의 성을 뒤에 붙인 ‘김황명륜’이었다. 가족에게 처음부터 이 사실을 알린 것은 아니었다. 성을 함께 쓰기 시작한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아버지는 그가 한 잡지에 ‘김황명륜’이라는 이름으로 쓴 글을 읽고, 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하냐”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아버지는 오히려 “김황명륜보다는 황금명륜이 훨씬 발음하기 좋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은행 통장이나 인터넷 사이트 가입이름, 공문서 등에 나타난 이름은 여전히 주민등록증에 적힌 이름 ‘김명륜’이다.
대학생인 이배하진(李裵河鎭·25)씨는 올 초부터 어머니의 성인 ‘이’와 아버지의 성인 ‘배’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

가족의 첫 반응은 걱정스러움.

“어머니께 두 분의 성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성이 친척들간의 동질성을 확인할 수 있는 도구인데 그렇게 써도 되는 거냐는 반응을 보이셨어요.기뻐하실 줄 알았는데 썩 내키시는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쓸 생각이라고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함께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요즘 명함을 받을 때 ‘김허○○’ ‘박이○○’ 등의 이름을 적어놓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낯선 일이 아니다. 최근 정부가 호주제 폐지를 적극 추진하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서울 서초동의 주부 김미애(42)씨는 “지난 주말 계모임 때 만난 친구들 사이에서 최대 화제는 호주제 폐지와 부모 성을 선택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며 “만약 내 아이가 부모 성을 함께 쓰면, 내 손자는 성이 4개나 되는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분분했다”고 했다.
정부가 호주제를 폐지하면 곧바로 자유롭게 성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아니요’이다.

현재 정부 내에서도 여성부는 아버지 성 강제조항을 폐지해 남편과 아내가 협의하에 자녀의 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입장인 반면, 법무부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부계(父系) 성 강제조항이 폐지되지 않는 이상, 자녀가 부모 중의 성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설혹 부계 성 강제조항이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 중 하나를 선택해서 쓰는 것이지, 둘 다 쓰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아버지 이름이 이민우, 어머니 이름이 강우영일 경우, 성을 ‘이’로, 이름을 ‘강영미’로 기록해 이름이 ‘이강영미’가 되는 것은 가능하다.

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두 사람의 성을 함께 쓰는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이들은 현재의 제도가 아버지 쪽의 대(代)를 이어가는 것일 뿐, 어머니 쪽의 대를 잇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아들 하나, 딸 하나씩만 낳는 추세이기 때문에 부모의 성을 함께 쓰는 것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자식을 낳을 경우, 아들은 부계 성을 이어가고 딸은 모계 성을 이어가자고 주장한다. 김이갑돌과 박허순희가 결혼하면 성은 김과 허만 따게 된다. 아버지 성 중에서는 부계를 의미하는 앞의 성을, 어머니 성 중에서는 모계를 의미하는 뒤의 성만 살아남는 것이다. 현재 제도하에서는 딸만 낳으면 대가 끊기고, 이 때문에 반드시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나라 낙태율도 세계 최고를 달리고 있다는 주장이다.

인터넷에서 부모 성 함께 쓰기를 주장하고 있는 신정모라씨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아버지와 어머니 성을 함께 쓰면 이상한 이름이 양산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어머니 성을 먼저 쓰고 아버지 성을 나중에 쓰는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부모 성을 함께 쓰는 것은 가족 중에서 어머니만 다른 성을 쓰는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자는 의미”라고 밝혔다.

/허인정기자 njung@chosun.com
/곽아람기자 aramu@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