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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아침논단]이젠 21세기형 개발모델을

여성연합 2010. 12. 29. 10:44
 
  

 
[기사문] [아침논단]이젠 21세기형 개발모델을
발행일 : 2003-06-23 등록일 : 2003-06-26


  
  [조선일보] 2003-06-23 () 30면 1714자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지가 벌써 반세기도 넘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식민주의가 남겨놓은 잔해를 앞에 두고 심각해질 때가 있다.
일상성 속에 뿌리깊이 들어있는 문화적 요소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서이다.

관습이나 제도로 정착되어 생활 속에 녹아들어 있는 것들 가운데는 그것이 일제의 유산인 줄도 모른 채 함께 살아온 것도 적지 않다.
그래서 최근까지도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얼마 전 종묘제례악이 조선왕실의 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일제가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호주제가 식민정책의 일환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조선시대 호구식(戶口式)에서도 호주를 기재하기는 했지만, 당시의 호주가 집안을 유지·존속시키는 데 절대적인 구실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1912년 조선호적령에 의한 호주제는 달랐다.

일본식 가족제도를 모델로 해서 일제는 단계적으로 식민지에 새로운 호주제를 정착시켜 나갔다. 일제 말기에 이르러서는 창씨령을 제정하고 서양자(♥養子)제도를 도입하면서 내선일체의 문화정책을 시행했다.일제가 심혈을 기울인 것은 문화적 동질화였지만, 못내 이루기 힘들었던 것도 문화적 종속이었다고 한다. 100년 가까이 인도를 식민통치했던 영국인들도 끝내 인도를 영국화시킬 수는 없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이런 식민 지배자들의 회고와는 달리 식민지 안에서의 문화는 이미 크게 변화돼 있었다. 어느새 슬그머니 일본화된 한국문화와 영국화된 인도문화를 들여다보게 된 신생 독립국의 국민들은 스스로의 모습에 놀라게 되었다. 식민통치 시절 일상생활 속에 깊이 스며든 문화를 어느 날 갑자기 되돌리거나 바꿀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탈식민주의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것이다. 최근 국민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새만금 개발사업의 뿌리도 일제시대에 있다. 1920년대 동진강 유역 개발사업이 시작되면서 전라북도 산간지역인 임실과 정읍에 운암저수지가 만들어졌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개발 사업이었다. 그 시절 저수지와 댐은 농업용수를 확보하고 전기를 공급하는 과학혁명의 상징이었다. 그 결과 조선의 농업이 크게 발전한 것도 사실이다.

척박한 농지가 옥토로 변하고, 농업용수가 확보되면서 동진강 하구와 부안·김제 바닷가의 갯벌이 대규모 간척지 농장이 됐다. 맛이 우수한 쌀이 생산됐고, 그 쌀들은 군산항을 통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경제개발시대에는 일제가 조성해 놓은 국토개발계획을 바탕으로 다목적댐 건설과 간척지 조성 등을 확대·추진해 나갔다. 이런 개발사업이 당시 심각한 식량문제를 해결했고, 그것을 기초로 산업화를 추진한 것은 사실이다. 그 후에도 꾸준히 경제성장이 이뤄져 이젠 산업선진국 대열에 서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식민시대로부터 시작된 근대화론과 사회개발론에 묶여있다.

그래서 옛것을 허물고 버리면서 새것으로 대체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나 이제 사회도, 환경도, 사람들도 많이 변했다. 따라서 새로운 철학적 인식에서 출발하는 발전구상안이 필요하다. 댐공사가 시작되면 발생하는 수몰민들과 간척공사로 바다를 잃게 된 어부들은 과연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인지, 그 지역의 생태계는 온전한 것인지, 다시 복구가 가능한 것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식민시대 이래 인간을 소외시키고 전체주의를 강조했던 근대적 개발론을 지양하고 사람과 땅과 물, 옛것과 새것이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21세기형 수준 높은 계획안이 새만금 사업에서 나올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 咸 翰 姬 전북대 교수·문화인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