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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문] [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5>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교수

 
  

 
[기사문] [닮고 싶은 2004과학기술인]<5>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교수
발행일 : 2004-05-16 등록일 : 2004-05-18
[동아일보 2004-05-16 17:34]

한국의 과학자 가운데 최재천 교수(51)만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은 없을 것이다.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그는 실험실 밖에서 연구하는 ‘현장형’ 학자이자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참여형’ 학자다. 2월 최 교수는 오랜 인문학적 잣대 속에만 묶여 있던 호주제 폐지 논란에 과학의 메스를 들이댔다. 호주제 존폐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자문에 응해 ‘유전학적 호주는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독특한 주장을 편 것.

“과학도 실험실에서 벗어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근거도 없이 주류인 척하는 불의에 대응하는데 과학만큼 좋은 수단은 없습니다.”

그의 이 같은 ‘외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시작됐다. 2000년 한 방송 특강에서 “21세기는 여성의 시대가 된다”고 주장해 여론의 주목을 받은 데 이어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을 통해 사회의 남성중심성에 대해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환경 문제에 대한 관심도 강해 생태적 삶과 생명 존중을 설파하는 친환경전도사를 자임해 왔다. 인간의 오만이 가져온 생명파괴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최 교수의 본업은 사회활동가가 아닌 과학자다. 과학자로서 그의 이름은 개미와 침팬지를 통해 일반인에게 알려졌다. 1999년 출간된 ‘개미제국의 발견’과 현재 설립이 추진되고 있는 영장류연구소는 그의 연구를 직접 대중과 만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회성 곤충인 개미와 침팬지는 사람의 행동과 인간 사회를 연구하는 데 밑그림을 그려주는 중요한 존재들이에요.”

처음부터 동물행동학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동물학보다 인문학에 관심을 쏟았고 틈나는 대로 스포츠를 즐겼다. 그러던 중 1976년 한 달간 내한한 세계적인 하루살이 전문가 조지 에드먼즈 박사의 조수 역할을 우연히 맡게 되면서 새로운 인생진로가 결정됐다.

“산천을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연구하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어요. 나도 그렇게 놀면서 연구하는 직업을 가졌으면 했는데 마침 제 전공(동물학과)이 거기에 딱 맞았던 거지요.”

전공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그는 곧 유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4년 내내 방치했던 성적을 다시 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 뜻있는 자에게 길이 있는 것일까. 인생의 이정표가 돼 준 에드먼즈 박사의 적극 추천으로 미국으로의 유학길이 열린 것이다. 당시 추천서에는 청년 최재천에 대해 ‘뭔가 일 저지를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1979년 미국 땅을 처음 밟은 그는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박사과정으로 입학했지만 자진해 석사과정으로 자신을 낮추고 그것도 모자라 전 학부과정을 다시 수강했다. 기왕에 하는 건데 기초부터 확실히 다지겠다는 생각이었다.

“1990년에야 박사를 끝냈으니 좀 길게 공부한 편이죠. 지금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 정도로 지독히 공부했어요.”

전공으로 동물행동학을 선택한 그는 처음엔 사회성 곤충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분야로 잡았다. 영장류를 연구하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한계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996년 방한한 세계적인 동물생태학자 제인 구달 박사와 인연을 맺으면서 영장류 연구라는 화두가 다시 삶 속으로 들어왔다.

“구달 박사의 헌신적인 노력과 조언, 성원은 제게 큰 힘이 됐습니다. 다시 연구에 뛰어들 용기를 가졌어요.”

최 교수는 특히 일반인과 함께 숨쉬는 과학에 관심이 많다. 과학자들도 사회 병폐에 관심을 갖고 이를 치유할 방법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그만의 원칙이 있다.

“흔히들 과학의 대중화를 말하는데 저는 ‘대중의 과학화’로 불러야 옳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이 과학적 마인드를 갖게 하자는 것입니다. 과학 대중화를 핑계로 한몫 챙기는 데만 관심을 쏟는 풍토는 경계해야 해요.”

최근 최 교수는 영장류연구소 설립을 진두지휘하며 눈코 뜰 새 없이 지내고 있다. 인간과 가장 가까운 영장류를 연구하는 세계적 수준의 연구기관을 만들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최 교수는 “어쩌면 영원히 지구상에서 사라질지 모르는 침팬지들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그 안에서 동물과 인간, 사회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하는 모델의 청사진을 그려보겠다는 게 동물학자 최재천의 포부다.

박근태 동아사이언스기자 kunta@donga.com


▼최재천 교수는▼


1953년 강원 강릉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고향의 산천을 찾았다. 1979년 유학을 떠나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미시간대의 조교수가 됐다. 1994년 귀국 후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활발한 강연과 신문 칼럼을 통해 과학과 환경의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 저서로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열대예찬’ 등이 있다.


▼청소년에게 한마디▼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다. 학창시절의 방황은 아름답다. 잠자고 밥먹는 걸 뺀 나머지 시간 동안 원하는 일에 악착같이 매달려라.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굶어죽은 사람은 없다.